억새가 파도치는 오름에 선 나는 가을을 항해하는 뱃사공
제주는 가을이 참 좋다. 섬 사방천지에 억새가 물결친다. 제주의 가을을 더욱 깊이 느끼려면 오름에 올라야 한다. 은빛 물결 사이로 숨바꼭질 하듯 찾아낸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자취를 따라 홀로인 듯 아닌 듯 걷는 즐거움! 오름에 가면 은빛 억새가 춤추고, 살짝 고개 내민 야생화의 귀한 아름다움에 가슴이 찡해온다. 이 가을 유난히 억새가 아름다우며 오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오름을 몇 군데 소개한다.
산굼부리 / 은빛 억새가 붉은 빛 노을을 만나면 이렇듯 황금빛이 난다. 가을이 가장 절정인 순간은 억새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해질무렵이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너른 들판 – 산굼부리
제주도는 화산폭발에 의해 생성된 섬이다. 제주섬안의 오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 깊숙이에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바다에서 솟아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산굼부리는 지하 깊은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흙과 암석을 날려서 구멍만 뻥 뚫린 분화구다. 그래서 단 몇 분만에 굼부리 능선에 이르러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깊고 큰 분화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분화구 안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사람의 출입을 불허한다. 420여 종의 희귀한 식물들과 여러 종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천연의 숲이다. 산굼부리는 독특하고 웅장한 분화구뿐만 아니라 입구의 거대한 돌탑과 돌담, 초원과 목가적인 풍경 등으로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산굼부리의 가을은 압권이다. 분화구 남서쪽 경사면 약 5만평에 온통 억새가 출렁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제주에서는 9월 중순부터 억새가 시작되어 11월경에는 하얗게 꽃을 피운다. 제주 최대의 억새군락지를 자랑하는 산굼부리의 가을억새는 붉은 색감에서 시작되어 점차 은빛으로 물들어간다. 분화구의 신비로움과 함께하는 가을 억새의 향연, 산굼부리의 가을초대에 응해보자.
❶ 산굼부리 정상에 오르는 길지 않은 여정, 그 길에 억새가 출렁이니 가을이 완연하다. ❷ 검은 빛 돌담사이로 거니는 사람들과 억새풍경이 여유롭기만 하다. 붉은 색감이 도는 것이 이제 갓 피어난 억새이다. ❸ 5만평에 물결치는 억새들, 그 너머의 오름들과 한라산이 굽어 보는 듯한 풍경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찾아가는 방법 :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31번국도(5·16도로)를 타고 가다 교래삼거리에서 1112번 지방도로로 진입하여 교래사거리의 미니미니랜드를 지나 조금만 더 진행하면 우측에 산굼부리가 보인다. ▶ 문의 : 064)783-9900 ▶ 관람요금 (성인기준) : 3,000원
따라비오름 / 땅할아버지가 편안히 좌정한 듯한 오름, 억새가 물결치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파인 굼부리들이 가을을 따사롭게 어루만진다.
땅할아버지의 은빛 수염 – 따라비오름
제주에는 가을하면 떠오르는 오름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름, 가을오름의 대표격은 따라비오름이 아닐까싶다. 따라비오름의 따라비는 땅할아버지를 의미한다. 가을이면 은빛 억새수염 흩날리며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계신 할아버지 모습이 오름의 위용과 영락없이 닮았다. 실제로 주변에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을 거느린 오름의 할아버지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을 지나 약간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면 따라비오름 정상에 다다르는데, 정상에서 보면 하나의 굼부리(분화구)가 아니라 좌우 양옆까지 모두 3개의 굼부리이고 봉우리는 6개에 이르는 독특한 형태이다. 말굽처럼 한쪽이 터진 굼부리와 원형의 굼부리로 서로 맞닿으며 이어져 굽이굽이 능선 따라 걸어가는 맛이 쏠쏠하다. 굼부리 안은 원형의 담이 둘러져 있고 생강과 비슷한 양하라는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멀리 바라보면 완만한 오름 능선 위로 굽이치는 억새와 한라산, 정석항공관이 보이고, 그 옆에 대록산, 소록산이 보인다. 많은 자식과 손자뻘 오름들이 주위에 불끈불끈 솟아있다. 이 가을 따라비오름에 꼭 올라 굽이치는 능선위에 서서 제주의 가을 분위기를 만끽해 볼일이다.
찾아가는 방법 : 1112번도로(비자림로)로에서 정석항공관 방향으로 진입, 가시리 사거리에서 성읍민속마을 방향으로 약 120여m쯤 가면 왼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이 있는데 바로 그 길을 따라 2.8km 정도 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오름이 따라비 오름이다. 정상까지는 30분정도 소요된다.
손지오름 / 오름 정상에 올라 굼부리를 따라 걷다보면 동거미오름의 독특한 모양새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동부오름군락의 진풍경이 펼쳐진다.
물결치는 은빛 가을바다 – 손지오름
제주의 360여개에 달하는 오름들, 다양한 모양새이지만 처음에는 그 형태가 그 형태 같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보여 구별이 쉽지 않다. 그 중에 쉽게 구별하라고 누군가 X자 표시를 해둔 듯한 오름이 있다. 나지막한 풀이 자라는 오름에 X자로 삼나무가 조림되어 찾기 수월한 손지오름, 가을에는 오름 전체가 억새로 물결친다. 억새밭 사이를 걸으면 억새 우는 소리만 들린다. 삼나무와 제주의 억센 바람에 싸락싸락 소리를 내며, 흥에 겨운 춤사위를 펼치는 은빛억새풍경이 인상 깊다. 이토록 아름다우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 키보다 크게자란 억새가 지천이고, 드문드문 피어난 야생화가 반겨줄 뿐 한적하기 짝이 없다. 손지오름 분화구 능선까지 올라서서 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만들어내는 커다란 굼부리가 문지방처럼 중간에서 살짝 올라선 부분을 경계로하여 두 개의 굼부리로 나뉜다. 억새가 피어난 오름등성이를 따라 걷다보면 남서쪽에 동거미오름, 서쪽의 높은오름, 북쪽의 다랑쉬오름이 개성미 넘치는 자태를 드러낸다. 멀리서 보면 물결치는 파도를 연상시키고, 오름에 올라서면 은빛 바다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손지오름은 마음을 한가롭게 한다.
찾아가는 방법 : 중산간도로(1136번 도로)와 비자림로(1112번 도로)가 만나는 송당사거리까지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 여기서 수산리방향으로 4.8km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에 용눈이오름 우측이 손지오름이다. 20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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