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과장의 제주가족여행

김과장메인

회사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적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올여름 제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올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나의 영향력에 가족여행은 시작되었고 아내와 아이들이 원하는 바를 섬세하게 파악하여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장하다!

 

그래, 결심했어! 가족여행을 가야겠다

 

집으로 향한다. 어제 거래처 사람들과 거나하게 마신 탓인지 오늘 하루가 길었다. 터덜터덜 아파트 7층, 우리 집 앞이다. 숫자 몇 개 삑삑 눌러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살며시 들어선 집안, 나의 등장에도 집은 조용하다. 아들 방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친구라도 왔나?’ 살짝 문고리를 돌려보니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안의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일 뿐이다.

“아빠 왔다”하는 말에 헤드셋 한쪽을 제치고는

“네” 이걸로 끝이다.

딸 방은 더 조용하다. 똑똑! 벌컥 문을 열었다가 한소리 들었던 이후로 정말 조심스럽게 딸 방을 노크한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중학생 딸은 침대에 엎드려서 SNS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나마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서는 “오셨어요” 한마디 하고는 바로 핸드폰 화면으로 얼굴을 향한다.

아내는 저녁준비에 정신이 없다. 가족을 위한 저녁이련만 그 구성원들 간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밀어붙여서라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애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부모와 안 놀려고 한다더니 여름에 제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니 딸애나 아들애나 불퉁한 표정들이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 여행 안 가면 용돈 끊는다는 엄포에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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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주여행을 함께 떠나는 날이다. 하지만 집을 나선 이후에도, 차 안에서도 내내 말이 없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느라 비행기를 타는지 마는지 옆에 엄마,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그동안 바쁘다고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못 했었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어색하다.

제주공항에 내려 렌터카로 서귀포에 있는 펜션에 도착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하는 여행에 상기된 듯하다. 아이들은 핸드폰에 코를 박은 채 여전히 말이 없다. 짐을 풀고 첫 여행지인 천제연폭포로 향한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 왔던 아련한 기억과 함께 폭포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는 엄청 크게 느껴졌는데……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하지만 첫 여행지 선택은 아이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카드였다. 흘깃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가보자.

아이들은 박물관은 살아있다, PLAY KPOP에 가자고 한다. 나에겐 솔직히 이해 불가의 전시관이다. 그래도 키득키득 웃으며 둘이 노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다.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겠다.

“카트체험? 아니면 승마?”

아들애는 카트를, 딸애는 승마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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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생겼는지 그제야 핸드폰에서 고개를 든다.

그래 까짓거, 두 가지 다 하자. 바람을 가르며 카트를 타다 보니 어느새 웃음소리가 커진다.

차에 부쩍 관심이 많은 아들이 쌩하고 달려나간다. 할 테면 해보자는 건가, 엎치락뒤치락 제법 신나는 경주를 하며 아들과 시선을 마주한다. 뭔가 남자로서의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승마는 가족 모두 타기로 했다. 이왕이면 가장 긴 오름코스를 돌자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딸애는 제법 폼을 잡으며 승마를 즐긴다. 바람이 우리 곁을 스친다.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했구나.’

시원한 빙수가게에 들러 커다란 볼에 가득 담겨 나오는 빙수를 서로 먹겠다고 다툼 아닌 다툼을 벌인다. 절로 웃음꽃이 핀다. 다음은 에코랜드다. 시원한 곶자왈 숲 속을 달리는 이색 기차여행에 재잘재잘 모녀가 이야기꽃을 피운다. ‘다음 제주여행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야겠다.’

저녁식사는 신경 써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글램핑장에서의 바비큐 파티. 아내는 고기 굽기와 서빙은 남자들 몫이라며 못을 박는다.

“엄마 같이 해요!”하는 아들애와

“아냐, 당신과 소연이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할게.”라는 나의 말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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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내 모양새가 영 어설펐는지 씻고 써는 일을 도와준다. 그래도 굽기는 끝가지 남자들이 했으니 내 말에 책임을 다한 것이다. 저녁식사 후 아내의 손을 잡고 가벼운 산책에 나서니 아이들도 따라온다. 전 같으면 핸드폰만 들여다보느라 같이 가자고 해도 마다했을 텐데……. 나름 이번 제주여행이 꽤 성공적이었다는 회심의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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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내일은 어디에 가고 싶니? 카약이나 아쿠아리움은 어떠냐?

여름이면 제주바다를 느껴봐야겠지. 쇠소깍에서 카약을 타기로 했다. 타려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단다. 너무 지루해 바닷가로 나가니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꽤 많다. 밀려들다 빠져나가는 파도를 따라 애들이 장난을 친다. 젊었을 때는 친구 한 명을 여러 명이 들어서는 바다에 풍덩 빠뜨리며 놀곤 했었지.

‘애들을 빠뜨리면? 아니다, 오히려 나와 아내가 아이들의 공격에 바닷물에 풍덩 빠질 것 같다.’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카약을 탄다. 비경을 보며 카약을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이 탄 4개의 카약이 한곳에 모인다. 울타리가 작게 둘러쳐진 것처럼……

아쿠아리움은 딸을 위한 코스다. 수족관의 해양생물에 홀딱 빠진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오늘은 왠지 바다의 날로 정해진 듯하다. 그렇다면 메뉴도 바다색으로 칠해볼까.

오늘은 아빠가 시원하게 쏜다.

“저녁은 싱싱한 회 먹으러 가자”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당장 아이들이 많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련다. 제주여행에서 느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그 안에 웃음이 머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이 별처럼 빛난다.

애들아, 사랑한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일러스트 /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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