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청춘 스무살, 무작정 떠난 제주도 여행기

청춘1

 

전반전 : 무식한 놈들의 여행은 용감했다.

 

“야야 잠깐 사진만 좀 찍고”

“또?”

구시렁대면서도 카메라 앞으로 모이는 저 3명은 코 찌질이 시절부터 서로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자란 내 10년 지기들이다.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밟아보는 제주도인데 그 당시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하나도 남아있질 않다.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는 이 역사적인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를 하늘 높이 쳐들고 시커먼 남자들 4명이 머리를 맞댔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저마다 괴상한 표정이다. 짜식들, 좀 멋있게 찍어보려 했더니만.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인증샷인데 화면이 얼굴들로 꽉 차 여기가 제주도인지 서울인지 분간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바쁘게 손가락을 놀려 SNS에 업로드했다. 해시태그까지 정성스럽게. 아! 이 재치는 도무지 숨길 수가 없다.

#제주도_도착 #멀쩡한_놈이_없어 #날씨_좋다 #너무_설레 #스쿠터로_제주도일주_시작!

올리기가 무섭게 ‘좋아요’ 3개가 추가된다. 보나마나 저놈들이다

대학교 첫 기말고사가 끝나고 모여 빈둥대다 어쩌다 여행이야기가 나왔고 어쩌다 보니 떠나온 제주도다. 이 여행이 끝나면 돌아가서 저마다 알바다, 자격증 시험공부다, 바쁠테니 여름방학 마지막 유흥이랄까, 뭐 그런 거다. 야자수가 늘어선 이국적인 공항 풍경에 가슴이 설렌다. 공기도 맑은 것 같아 숨을 깊게 들이쉬는데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지나간다.

“콜록콜록.”

아무리 그래도 구름 위에 올라탄 듯 들뜬 내 기분을 망칠 순 없다. 으하하.

우리의 계획은 이렇다. 스쿠터를 타고 제주공항에서 출발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부터 돌아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에서 실컷 놀고 다시 돌아오는 거다. 갑자기 떠나온 데다 돈도 별로 없어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묵거나 캠핑을 하기로 했다. 저 녀석들과 2박 3일 동안 부대낄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도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꽃피는 새로운 사랑이 있을지?

청춘2

 

스쿠터를 빌려 타고 이제 진짜 출발이다! 잠깐 잠깐, 그 전에 인증샷

#2박_3일_나의_애마 #잘_부탁한다 #헬멧을_꼭_써야_돼! #덥다_더워

공항 근처 붐비는 도로를 벗어나니 스쿠터에 속도가 붙어 더위도 차츰 가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앞서가던 녀석이 수신호를 보냈다.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 들어가 스쿠터를 세우니 주변이 주차된 자동차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여기가 요즘 제주도에서 제일 핫한 곳이다. 인마. 너희 모르지?”

저렇게 말하는 놈은 외가가 제주도라 방학이면 늘 제주도에 왔다고 우리를 완전 촌놈 취급하며 뻗대고 있는 놈이다. 나와 다른 친구들도 준비 하나 없이 저놈만 가이드로 믿고 왔으니 의기양양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저 콧대 높은 행동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여기가 어딘데?”

“애월.”

아 애월! 그 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카페가 있는 곳이다. 사람들을 지우니 눈에 익은 모습이 나타난다. 나지막한 카페 바로 앞에 잔잔한 바다. 이 멋진 곳에서 얼음 동동 시원한 커피 한 잔이 눈에 아른거리긴 하지만 우리에겐 커피는 사치일 뿐이다. 얄미운 친구 놈이 한마디를 더한다.

 

청춘3

“야, 저기 뒤에 있는 게 지드래곤 카페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유독 붐비는 한 카페가 보였다. 과연 건물부터 간지(?)가 좔좔 흐른다. 그렇다면 바로 인증사진이지! 얼른 달려가서 잔뜩 폼을 잡고 사진을 찍어본다.

#지드래곤_카페 #몽상드애월 #지드래곤_보다_내가_낫지?

업로드 완료.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에 황당함이 가득하다

그 이후로도 우리의 땀내 나는 여행은 계속 됐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갑자기 나타난 협재해변에 마음을 뺏겨 청춘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바다다!”라고 소리치며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갔다. 해 질 녘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와 고요히 떠 있는 작은 섬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조차 생각에 잠기게 해주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작은 섬의 이름은 비양도였다.

제주의 천하진미들을 뒤로 하고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달리고 또 달렸다. 밤이 깊어서야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하면서 옆자리의 여자들을 흘끗거리기도 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웃는 모습이 예뻤지만 숙맥인 나와 친구들은 결국 한마디도 걸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기다린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었는데. 그날 밤 아쉬움에 이불을 뻥뻥 차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청춘5
후반전 : 무식함의 끝에 남은 건 피로

 

스쿠터로 제주도 일주는 힘든 일이었다. 2박 3일이라는 빠듯한 일정 탓에 느긋한 구경은 고사하고 달리고 또 달려야만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우리가 딱 그 꼴이었다. 가이드로 믿었던 놈도 사실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길을 헤매다 가고 싶던 곳을 못 가기도 했다. 스쿠터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엉덩이랑 허리는 아프지, 내리쬐는 뙤약볕이 뜨거워 헬멧 안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소나기라도 올라치면 꼼짝없이 비 맞은 생쥐 꼴이었다. 부랴부랴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쫄딱 젖은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슈퍼마켓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건네기도 했다. 그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일정의 절반이 지나 서귀포시에 도착했다. 서귀포에서는 맛있는 먹거리가 많아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는 매일올레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모닥치기라는 떡볶이에서부터 각종 꼬치구이, 풀빵….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 기어이 시장치킨을 시키고야 말았다. 갓 튀긴 닭에 마늘을 다져 넣어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줄줄 흘렀다. 맥주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지만 스쿠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어느새 까맣게 그은 친구들은 기름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헤헤 웃었다

 

청춘4

 

제주 첫 방문이나 다름없던 우리였기에 유명하다고 소문이 난 곳은 꼭 들르려고 노력했다. 사실 SNS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성산일출봉에 간 날은 정상까지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를 하며 무모하게 달려보기도 했다. 그마저도 넘치는 중국인들 덕분에 속도가 나지도 않고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지만. 잠깐이었지만 우도에도 다녀왔다. 자전거로 우도를 돌아보고 유명하다는 땅콩도 한 봉지 사서 돌아왔다. 마지막 날, 김녕성세기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다. 신나게 수영도 하고 장난도 치며 놀다가 이날을 위해 돈을 아끼고 또 아꼈던 만큼 마트에서 제주산 흑돼지와 술을 잔뜩 사와 노릇노릇하게 구워 실컷 먹고, 실컷 마셨다. 바닷가 근처라 공기는 눅눅하고 짠 내가 올라왔지만 그래도 파도소리가 운치 있던 밤이었다

 

연장전 : 그래도 즐거웠던 그 여름의 제주도

 

처음엔 SNS에 사진을 잔뜩 올리고 좋아요를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언제부터인가 사진은 찍었지만 SNS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웬수 같은 친구들을 찍고 웃으며 나눠 볼 뿐이었다. 친구들도 그랬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오랜 시간 쳐다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떠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었던 이 뜨거운 여름의 제주도를 잊지 못할 것이다

 

뜨거운 여름의 제주도! 잊지 않을게^^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김지은

일러스트 /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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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칸타타_더치블랙 says

    내 20대 때는 왜 저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쁘게 살았고, 늘 바빠서
    미루고 미루며 살아왔어요.
    이제라도 시간을내서 친구들과 멋진 추억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글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ㅎㅎㅎㅎㅎㅎ

  2. 제주사랑 says

    저도 20대때 친구들과 여행을 간적이 있는데 처음엔 열심히 사진찍기 바빴어요ㅎㅎ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사진은 뒷전이고 친구들과 그시간을 즐기고 있더라고요ㅎㅎ 급하게 떠난 여행이였지만 너무 재미있었던 시간들이 였어요 그런 좋은 추억을 다시 떠올릴수 있게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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