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특집] 섬, 바람 그리고 꽃길 – 바람길 (올레20코스)

바람길

물빛 곱기로 유명한 김녕 바다 멀리서 풍력발전기가 유유히 돌아간다.

 

바람길

그 길을 걷다 보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에메랄드 빛 바다와 새하얀 풍력 발전기가 어우러지고 돌담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변화무쌍한 바람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돌과 여자 그리고 바람이 많아 삼다의 섬이라 불리던 제주. 그 중의 ‘여다(女多)’는 이제 옛말이 되었으니 제주도는 명실공히 ‘돌과 바람이 빚어낸 섬’이다. 특히, 제주의 바람은 맞아보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섭다. 제주 사람들은 평생을 바람과 싸우다시피 살아야 했다. 나지막한 지붕에 새를 꼬아서 만든 줄을 단단하게 엮였고, 그것도 불안하면 아예 그물을 덮기도 했다.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올레 길도, 해안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이문간(가까운 대문)도 바람을 막기 위함이다. 제주어가 유난히 짧고 빠른 것도 바람 때문이다. 바람이 강해 체감온도가 낮아 습관적으로 말을 빨리 하고, 말의 끝부분이 잘 들리지 않아 말이 짧아졌다고 한다. 이렇듯 바람은 제주 사람의 삶 속 깊이 파고들었다.

 

바람길지도

 

바람길1

 ❶ 김녕 서포구는 탁 트인 바다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❷ 성세기 해변에 가기 전, 야트막한 언덕에 오래된 도대불이 자리잡고 있다. ❸ 새하얀 백사장과 물빛이 고운 세화 해변에 갈매기들이 여유롭게 날아든다.

 

한적한 어촌 마을인 김녕 서포구 부근 어민복지회관에서 20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간세(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인 이정표)가 보인다. 이른 봄, 세차게 부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지만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의 풍광에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인다. 거센 바람을 피해 마을 안길에 들어서자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고요하다. 아무리 험한 바람도 얼기설기 얹어 놓은 돌담 틈 사이를 지나 굽이굽이 휘어진 골목길을 만나면 이내 가라앉게 된다. 돌담이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길은 모진 바람을 이겨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제주의 멋이다.

김녕 마을길을 지나면 독특한 이름을 가진 성세기 해변에 다다른다. 예전 성세기라는 사람이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해서 해변으로 끌고 와 큰 벌을 내렸다고 한다. 그 후 해변에서 안좋은 일이 자주 생기자 위령제를 올리고 이름도 성세기라고 붙이게 되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해변은 새하얀 백사장과 검은 현무암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저 멀리 풍력 발전기가 유유히 돌아간다. 바다를 옆에 끼고 걷다보면 덩개 해안을 만나게 된다. ‘덩’은 바위를 뜻하고 ‘개’는 바다라는 뜻이니 ‘바위가 있는 바다’이다. 말 그대로 현무암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는 평원이다. 날이 좋으면 바다 한가운데 툭 솟아오르는 두럭산(설문대 할망의 빨래판이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해안가에 쭉 둘러쳐져 있는 돌담인 환해장성을 따라 월정마을에 들어선다.

 

56호본문

❹ 왜구 침입에 대비하여 쌓아 놓은 환해장성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둘러쳐져 있다. ❻ 월정리 해변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월정 해변은 요즘 동쪽 지역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한가했던 작은 해변은 카페, 게스트하우스, 베이커리 가게가 생기더니 사람들로 북적댄다. 아늑하게 펼쳐진 바다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목도 축일겸 ‘고래가 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주인이 “점 봐드릴까요?”하고 빤히 쳐다보더니 “여기 점, 저기 점 있네요! 하하하!”라며 얼굴의 점을 가리키면서 활짝 웃는다. 유쾌한 카페 주인도 제주 여행을 하다가 월정 해변에 반해 눌러 앉게 되었다고 한다. 해변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자 바다를 카페 삼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려본다.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소리에 두리번거리다 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람개비가 떡 하니 서있다. 20코스를 왜 ‘바람의 길’이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웅장한 자태의 풍력발전기가 행원마을까지 줄지어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옛날 제주 사람들에게는 통제 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이제는 에너지원이 되고 풍력발전기의 이국적인 풍경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쑥이 지천으로 자라는 쑥동산을 지나 행원 마을 안길을 걸어 행원포구까지 왔다면 올레 20코스 중간까지 온 셈이다. 포구 앞 작은 비석은 광해군이 제주로 유배 올 때 내렸던 기착지였음을 말해준다. 광해군은 4년 4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고 제주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옛 시절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행원 마을이지만 지금은 동네 어르신들이 밭일을 하는 그저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포구를 지나 다시 마을 깊숙이 안길을 걷다보면 나지막한 언덕에 좌가연대가 보인다.

또다시 마을 안길과 해안 길을 들락날락하며 한동리를 지나 평대리 까지 이른다. 아름드리 자라난 팽나무가 보이는 뱅듸길(돌과 잡풀이 우거는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을 지나면 세화리에 도착이고 20코스도 막바지에 접어든다. 5, 10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세화오일장은 어물전 너머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앞에서 열려 시장 분위기를 더욱 활기하게 한다. 신선한 수산물과 과일, 옷, 신발, 잡화 등 가지각색의 좌판이 늘어서 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엔 종점인 제주해녀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괜찮다. 제주 해녀의 일터, 문화, 생활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 되어 있어 제주 해녀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긴 구간을 걷느라 배가 출출하다면 올레 20코스 평대리 근처의 해맞이 쉼터를 찾아가자. 갖가지 해산물이 큼직큼직 아낌없이 들어간 해물파전이 기다리고 있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과 쫄깃한 해산물이 어우러져 한 판이 눈깜짝할 새 사라진다. 또 다른 메뉴인 해산물 모듬라면과 전복라면은 얼큰한 국물로 유명해 도민들도 즐겨찾을 만큼 인기가 많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강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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