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공원 시작점에는 몇 백 년은 됨직한 후박나무가 멋들어진 위용을 드러내며 여행자를 맞는다.
금산공원(애월곶자왈)
애월곶자왈의 끝자락 금산공원은 삼림욕을 즐기면서 제주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잘 정돈된 탐방로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어주고 곶자왈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잠깐의 짬으로도 가족들과 함께 걸어볼 수 있는 소담스런 숲길이다.
금산공원 숲에 들어서면 꼭 하늘을 한번 쳐다봐야한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큰 나무일지라도 다른 나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도 다른 숲의 두 배는 될 듯하다.
애월곶자왈이 시작되는 노꼬메오름에는 지금 억새꽃으로 가을이 한창이지만 곶자왈의 끝자락인 금산공원에는 아직도 초록색으로 가득하다. 애월곶자왈은 약 9km가 정도 구불구불 이어진 제법 작지 않은 규모의 숲이다. 가끔 노꼬메오름의 화산이 폭발하던 순간을 상상해보곤 한다.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화산폭발은 지하의 마그마를 하늘로 분출시켜 노꼬메오름을 만들면서 계속해서 땅 밖으로 밀어낸다. 밖으로 나온 용암은 오름의 북쪽 방향으로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면서 이곳 납읍리 원동마을에 와서야 멈춰 섰다. 용암이 흘렀던 곳에는 서서히 생경한 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의 숲이 만들어지게 된다.
용암이 멈춰 섰던 곶자왈의 북쪽에는 마을이 들어섰다. 이곳이 지금의 납읍리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숲은 우거지지 못했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너무 많았다. 보기 흉한 돌이 보이면 마을에 재앙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금산(禁山) 이라 하여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게 된다. 그리고 남쪽에는 금악이라고 하는 오름이 있는데 언뜻언뜻 보이면 마을에 재앙을 맞는다 하는 속설도 있었다. 입산금지는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들로 하여금 금악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풍수지리적인 속설로 시작된 마을사람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큰 훼손 없이 나무와 풀들을 잘 자랄 수 있게 했고 원시성으로 가득 찬 지금의 숲이 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❶ 금산공원 곶자왈 숲에는 제주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숲길을 걸으면서 제주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자연림으로 울창한 금산공원은 이제는 금지구역이 아닌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금산공원(錦山公園)이 되었다. 마을 가까이 있으면서 원시림의 모습을 잘 보여줌으로써 애월곶자왈의 끝자락은 휴식을 위해 즐겨 찾는 공간이 된 것이다.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입구로 들어서면 야생으로 자란 후박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의 크기에 기가 눌린다. 비록 상처는 났지만 성인 두 사람이 두 팔을 펼친 것보다 더 굵고 오래된 후박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고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모습을 닮았다. 나무줄기에 터전을 삶고 자라는 일엽초와 줄기를 감고 올라간 후추등과 마삭줄 그리고 나무 아래의 또 다른 키 작은 나무인 산호수가 어우러지며 더욱 원시림을 느끼게 한다. 산호수와 후추등은 제주도 남쪽 지역에서 자라는데 이곳에서 보이는 것이 아마 북방한계선 쯤 되는 듯하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상쾌하고 시원한 피톤치드 향도 다른 숲의 두 배는 됨직하다. 금산공원에 들어서면 꼭 나무 위를 한번 쳐다봐야 한다. 이곳의 나무들은 아무리 키가 커도 다른 나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나뭇가지는 아슬아슬하게 다른 나무의 옆을 지나면서 잎을 내고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양분을 얻어갈 뿐이다. 겹겹이 쌓여진 돌무더기가 동산을 만들다가 다시 골짜기로 이어지는 모습은 여느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곳이 곶자왈임을 분명하게 알게 해준다. 돌무더기 틈에서는 양치식물 밤일엽이 자라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밤일엽의 최대 군락지라고 해도 될 만큼 굉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제주의 동쪽에 선흘곶자왈이라는 상록수림이 있다면 서쪽에는 금산공원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래서 비교적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자연림이 잘 보존되어 높은 학술적 가치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 37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❷ 나무로 만들어진 탐방로가 끝날 즈음엔 낙엽이 깔린 길이다. 온갖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숲길을 걷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세상 이야기는 내려놓게 된다. ❸ 굵고 오래된 후박나무줄기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덩굴식물들이 어우러지며 더욱 원시림을 느끼게 한다. ❹ 기온이 따뜻한 제주의 남쪽 숲에서 자라는 키 작은 나무인 산호수가 이곳에서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❺ 탐방로 끝자락에는 선비들이 글공부를 했던 자리가 인상정(仁庠亭) 이라는 글씨로 남겨져 있다.
곶자왈 내 커다란 소나무 아래 정감 있게 내려앉은 기와집 하나. 그리고 마당에 만들어진 제단 세 개. 이곳이 마을공동제를 지내는 장소라 했다. 제주에서는 새해가 밝으면 여자들은 당을 찾아 가족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 제를 올리지만 남자들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포제라는 것을 지낸다. 유교식 전통에 의해 치러지는 마을제는 지금도 마을마다 많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납읍리 포제는 아직도 예전의 의식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하여 제사를 올릴 때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일 년에 춘제(春祭)와 추제(秋祭) 두 번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춘제 한 번밖에 하지 않는다. 제사는 음력 정월에 올리는데 제관은 12명으로 구성되어 3일 전에 제청(祭廳)에 모여 합숙하면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제사는 포신(사람 관장신), 토신(마을 수호신), 서신(홍역신과 마마신)에 대해 올린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른쪽으로 산행을 시작하여 탐방로가 끝날 즈음 인상정(仁庠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부터 많은 인재가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을 낀 곶자왈 숲은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짓고 낭송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장소가 되기도 했다. 자연을 가장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었던 셈이다. 인상정은 그 가운데 하나로 ‘정(亭)’이라는 글자에서 이곳에 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에도 송석대(松石臺)라고 하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녹음 짙은 숲에서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수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들리는 듯하다.
곶자왈은 가끔씩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애월곶자왈의 끝자락 금산공원처럼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도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 왔다. 최근에는 숲이 울창하여 좋다는 소문이 여기저기로 퍼지면서 올레15코스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제는 제주사람들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까지 찾는 장소가 되었고 세상 밖으로 조금 더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출입이 많아짐에 따라 숲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숲은 사람들의 고향 같은 소중한 곳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잘 보존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조금 있다가 소나무를 감고 올라간 담쟁이 잎에 단풍이 곱게 들면 이곳도 가을이 한창이겠다. 낙엽이 지는 계절에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금산공원에서 색다른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는 산행이 될 듯하다.
에디터 / 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한라생태숲 숲해설가)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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