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제주를 지켜온 생명의 원천, 화순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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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들어서면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화산석과 누가 일부러 쌓아놓은 것 같은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돌무더기는 다시 조그만 동산이 되면서 끊어질 듯 이어지고 돌 틈으로 올라온 나무와 함께 거대한 밀림을 만들고 나무줄기와 바위를 휘감은 이끼와 콩짜개덩굴은 깊은 숲으로 안내한다.

 

제주를 지켜온 생명의 원천, 화순곶자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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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에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진 바위와 아름드리나무가 어우러지면서 초록의 생명들이 넘쳐난다. 이 활력은 늘 제주사람들의 삶을 넉넉하게 품어왔다. 그래서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제주의 가장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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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곶자왈에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면 아마 숲속으로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큰 가시로 무장한 나무들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덩굴식물들 그리고 언제나 푸른빛을 잃지 않은 양치식물은 곶자왈만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곶자왈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원시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만 년 전에 흘렀음직한 용암덩어리와 그 위에 얽히고 얽힌 풀과 나무는 척박한 환경을 일구며 살았던 제주사람들의 깊은 사연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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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봄기운은 화순곶자왈에도 찾아들어 낚시제비꽃이 곱게 꽃을 피웠다. ❷ 화순곶자왈의 탐방로는 한 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산책길이 나있다. ❸ 곶자왈의 나무들의 줄기는 잘려나갔지만 남은 밑동에서 다시 가지가 자라나서 숲을 이루었다. 이것을 맹아림이라 부른다. ❹ 곶자왈은 양치류가 자라기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제공한다. 제주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밤일엽.

 

 

3월을 넘기고 있는 화순곶자왈은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늘푸른 나무들이 자라나고 투박한 현무암을 둘러싸고 있는 이끼의 파릇한 모습에서 생동감이 넘쳐난다. 이처럼 곶자왈은 언제나 녹색의 색깔로 제주의 자연을 지켜온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제주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비밀스런 곳을 찾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주사람들의 삶과 자연을 한꺼번에 품고있는 곳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화순곶자왈의 탐방은 전망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위엄 있게 자리 잡은 산방산을 배경으로 넉넉하게 숲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만들어진 풀밭에는 평화롭게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곶자왈 초입의 켜켜이 쌓인 돌무더기와 우거진 숲으로 인해 잊게 마련이다. 입구는 꾸지뽕나무, 산유자나무 등 가시로 중무장한 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더욱이 자잘한 돌멩이가 널브러진 모습에서부터 덩치 큰 바위들이 쌓여 산을 이룬 모습까지 보인다. 아마 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면 숲속으로 들어올 엄두가 나지 않았을 듯싶다. 이처럼 곶자왈은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돌들이 쌓이고 그 위로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만들어진 숲을 말하며 제주도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지역마다 이름도 달라 어떤 곳은 ‘곶’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자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곶자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아직도 지역에 따라서 곶자왈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정착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화순곶자왈은 곶자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쌓여진 용암더미가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넓은 공간을 만들고 돌무더기 위로 무환자나무, 새덕이나무, 참식나무, 푸조나무 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숲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쪼개어져 쌓여있는 돌과 숲은 곶자왈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환경을 만든다. 제주는 아무리 비가 내려도 홍수가 나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곶자왈을 이루고 있는 돌 틈으로 빗물이 잘 스며들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시간당 20~30mm 정도 비가 내려도 물이 넘치고 홍수가 나는데 곶자왈은 몇 백mm의 폭우가 쏟아져도 물이 빠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넘치는 일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홍수를 예방하고 물길을 잡는다고 곳곳에 시멘트로 수로를 만들고 있는 일은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스며든 빗물은 지하수를 이루면서 최근에는 식수로 사용되고 ‘생수’라는 상품으로 만들어져 제주도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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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숲길을 걷는 것은 산을 오르는 운동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오감을 열고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걸어야 한다. 화순곶자왈은 오랜 세월 모여진 제주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화순곶자왈에 들어서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무환자나무와 예덕나무이다. 무환자나무는 심으면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다 하여 집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었던 나무이다. 그리고 열매에 사포닌 성분이 있어 물에 담고 문지르면 거품이 일기 때문에 비누가 귀하던 시절 비누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또한 씨앗은 얼마나 단단한지 예전에는 스님들의 염주의 재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곳에는 군락을 이룬 예덕나무도 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햇빛이 많아야 잘 자라는 예덕나무는 숲의 천이과정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곳은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숲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것은 화순곶자왈 뿐만 아니라 제주의 다른 지역의 곶자왈도 비슷하다. 그래서 곶자왈에서는 크고 아주 오래된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일제 말 전쟁준비를 위해 행해졌던 벌목사업과 제주4.3이 큰 이유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곶자왈의 나무가 생활에 이용되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곶자왈을 맹아림 또는 2차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도 초록색으로 빛나는 이끼에서부터 서로 다른 모양의 양치식물과 고고한 모습의 난초과 식물, 그리고 일 년 내내 잎을 달고 있는 늘푸른나무까지 화순곶자왈은 다양한 식물로 충만해있다. 이것은 곶자왈만이 가지는 독특한 기후에서 비롯된다. 곶자왈의 바위 또는 돌멩이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은 지하로 모여 들면서 꾸준한 습도를 유지시켜주고 숲을 이룬 나무는 외부로 기온을 빼앗기지 않는다. 이런 미기후는 이끼류와 양치류 그리고 난초류의 천국을 만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곶자왈이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곶자왈이 동물들의 먹이를 제공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중산간 지역이 개발로 인해 점점 숲의 면적이 줄어들면서 곶자왈은 동식물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곳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라산과 해안을 연결하는 소중한 통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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❷ 콩짜개덩굴은 바위와 나무줄기를 타고 그 경계를 허물며 숲속으로 길을 안내한다. ❸ 곶자왈에서는 일년생 풀꽃으로부터 아름드리 나무까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스런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❹ 화순곶자왈의 호젓한 산책길은 부드러운 송잇길에서 시작되어 송잇길로 마무리된다. ❺ 겨울의 입김이 남아있지만 초록의 이끼와 고사리류로 곶자왈은 생동감이 넘쳐난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끼와 콩짜개덩굴은 나무줄기와 돌담을 타고 숲속 깊은 곳으로 길을 안내한다. 잘 정돈되어 있는 돌담은 많은 이야기를 숨겨놓은 듯 잘 다듬어져 있다. 이것을 잣담이라 했다. 잣담은 농사를 지을 때 불필요한 돌들을 한쪽에 갖다 놓고 밭담을 의지해서 쌓아올린 것을 말한다. 이것은 농사지을 땅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비가 오면 밭을 돌볼 수 있는 이동통로(잣질)로 이용했다. 강인하고 지혜로운 제주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잣담을 화순곶자왈에서도 만날 수 있다. 곶자왈에는 푸른 숲이 있고 소와 말이 먹을 것이 많다보니까 잣담을 목장의 경계로 활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곶자왈은 척박하여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제주사람들의 삶과 관련이 깊다. 곶자왈에서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불을 피울 땔감을 마련했고 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구워 팔기도 했다. 송이를 깔아 만든 오솔길은 일본군막사터로 이어진다. 일제말 미국과 최후의 전투를 위해 일본 군부대가 들어서고 진지동굴이 만들어지면서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에 많은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4.3의 광풍 속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제주의 곶자왈은 역사의 고비마다 제주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 안았다.

하지만 곶자왈이 제주의 생태 및 역사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땅으로 생각해왔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진행형인 듯하다. 말로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이야기 하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하게 개발이 허가되면서 수십 년 동안 자라던 나무가 잘려나가기 일쑤이고 그에 따라 동물들의 삶의 터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곶자왈을 통해 지하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제주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이라 하고 곶자왈은 상쾌한 산소를 제공해주는 제주의 허파라고 하면서 숲과 바위를 걷어내어 골프장과 리조트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곶자왈에 대한 생각이 진정 그러하다면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일관성 있는 정책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않을까 싶다.

화순곶자왈의 호젓한 산책길은 부드러운 송잇길로 시작되어 송잇길로 마무리된다.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에서 올라온 아름드리나무와 그 아래에 흩어진 초록의 생명에서 활력 넘치는 제주 곶자왈의 역동성을 보게 된다. 그 활력은 나무 사이로 굽이굽이 돌아 나있는 산책길에 결 고운 바람을 만든다. 그 바람과 함께 길을 따라 숲을 나오면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원시성으로 가득찬 숲 제주의 곶자왈에서만 가능한 일일 터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성권(자연생태해설사, 한라산생태숲 숲해설가)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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