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원시성을 고이 간직한 신비의 숲, 신평-무릉 곶자왈

신평-무릉곶자왈1

6월의 신평-무릉곶자왈은 때묻지 않은 원시성으로 가득하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돌무더기 위로 헝클어져 있는 나무들. 시원한 그늘과 향긋한 꽃향기가 어우러지면서 녹음 짙은 초여름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리고 있다.

 

 

신평-무릉곶자왈5

 

 

원시성을 고이 간직한 신비의 숲, 신평-무릉 곶자왈

초여름의 더운 날씨지만 신평-무릉곶자왈로 들어서자 시원함이 느껴지면서 쥐똥나무 꽃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아무래도 여름철 숲길여행에는 그늘이 있어야 제격이다. 곶자왈에는 시원한 그늘이 있고 꽃향기가 있으니 숲길 여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지 않나 싶다. 신평에서 시작되어 무릉에서 끝나는 곶자왈 숲은 초여름 숲길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크게는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 안에 위치하면서 주변의 청수, 저지, 산양곶자왈로 이어진다. 이곳은 곶자왈이 가지는 특징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올레코스(14-1)가 만들어지면서 예전과 달리 사람들의 모습도 자주 뜨인다.

 

저지-청수곶자왈(2013)13

 

숲으로 들어서면 언제 걸어도 좋은 호젓한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종가시나무, 센달나무, 녹나무, 육박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들이 보인다. 이곳은 동북부 지역의 선흘곶자왈과 더불어 가장 넓게 난대성 상록수림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초입부터 아아용암이 만들어낸 돌무더기가 연속적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여느 곶자왈처럼 가는쇠고사리가 그 위를 점령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올라온 백서향의 열매가 벌써 빨갛게 익고 있다.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자취를 서서히 감추고 있지만 아직도 이른 봄 숲으로 들어서면 진하게 풍겨오던 백서향의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숲은 한층 더 우거져 원시림을 느끼게 한다. 이 시기에는 모든 나무들이 잎을 달고 있기 때문에 숲 속에서 풀꽃을 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무가 피워내는 꽃들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쥐똥나무의 꽃향기는 백서향 못지않은 듯하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생달나무와 이나무도 꽃을 달고 있다. 이른 봄부터 꽃망울을 품고 있던 빌레나무는 어느새 꽃이 다 져버렸다. 최근 아열대성 식물들이 제주에서 자주 발견되곤 하는데 빌레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빌레나무는 오랜 시간 꽃망울을 달고 있다가 한순간 꽃을 피워버리는 습성 때문에 꽃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지-청수곶자왈(2013)47

신평-무릉곶자왈에는 용암대지가 넓게 펼쳐지면서 그 위로 습지를 만들고 있다. 일부러 돌담을 둥굴게 쌓아 놓은 것을 보면 생활용수로 사용했음직하다.

 

앞서 걷는 사람의 뒷모습은 어떤 얼굴표정을 하고 있을지 늘 궁금하게 한다. 올레꾼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만난 섬다래가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기세이다. 만나기 어려운 섬다래를 볼 수 있어 기분은 좋은데 오래도록 남아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조금 있다가 열매를 맺으면 새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식량이 될 것이다. 이처럼 곶자왈은 언제나 동물들을 품어 안는 보금자리가 된다. 때마침 멸종위기종인 팔색조가 울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구역임을 알리고 있다. 하늘을 가리던 숲길에는 다시 햇볕이 들고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그 뒤로 목장임을 알려주는 출입문이 길을 가로 막는다. 푸른 초원이 연상되는 일반적인 목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숲이 우거진 제주의 곶자왈은 목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바람을 막아주고 일 년 내내 동물들에게 먹을거리가 풍부했기 때문에 곶자왈은 겨울철 소나 말을 방목하는데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곶자왈 안에는 소나 말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잣성을 만들고 자갈을 치우고 드나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지금 걷고 있는 숲길은 당시 만들었던 소나 말이 다니던 길인 셈인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주변에는 아직도 물을 먹이기 위한 급수장 시설이 군데군데 잘 보존되어 있다.

 

신평-무릉곶자왈3

❶ 빨갛게 익은 덧나무의 열매가 탐스럽다. ❷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섬다래도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❸ 산유자나무의 날카로운 가시는 곶자왈의 원시성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신평-무릉곶자왈2

❶ 신평-무릉곶자왈의 여름은 늘푸른나무의 상쾌함과 바위를 덮은 착생식물의 싱그러움으로 밀림을 이루고 있다. ❷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모습. ❸ 호젓한 숲길을 걷은 자체로 힐링이 된다. 

 

숲길은 비교적 넓게 잘 빠진 아스팔트길로 연결된다. 곶자왈을 가로질러 만들어 놓은 이 길은 제주영어교육도시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도로 양 옆으로 쌓아올린 돌담이 너무 높다. 이렇게 담이 높으면 기후환경이 달라져 주변 식생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텐데 자연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대목이다. 세계 명문 교육기관을 유치하여 해외유학이나 해외연수를 대신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마치 돌담의 높이만큼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길을 건너서 다시 곶자왈로 들어서자 파호에호에 용암지대가 나타난다. 이 용암은 점성이 낮아 멀리 흘러가기 때문에 넓은 용암대지를 만들어 놓는다. 이 넓은 바위지대를 제주에서는 빌레라 부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답답빌레라 했다. 여기서 ‘답답빌레’는 이곳을 걷는 일이 답답할 정도로 지루한 바윗길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용암대지가 얼마나 넓고 길게 펼쳐졌기에 답답빌레라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파호에호에 용암이 있는 곳이 그렇듯 이 주변에는 용암동굴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 동굴들은 마을사람들의 애환과 연결되면서 ‘오찬이궤’의 민속설화 등 많은 이야기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탐방로 주변에 땅이 움푹 내려앉은 함몰구를 보는 것도 놓치면 안 된다. 그 안에서 절정을 뽐내고 있는 큰개관중, 더부살이고사리, 쇠고비로 인해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곳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함몰구는 용암동굴의 일부가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원형의 함몰지형을 말한다. 함몰구 내부는 지하의 공기가 끊임없이 유입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거의 일정 수준의 기온을 유지 하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부는 풍혈기능을 하기도 한다. 길은 다시 습지로 연결이 된다. 물이 있는 곳은 생활에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듯 둥그렇게 돌담을 두르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문화와 원시성으로 가득한 이곳을 제주곶자왈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공원이 조성되면 숲 산책 코스로, 생태교육장으로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될 듯하다.

 

 신평-무릉곶자왈4

➍ 숲길여행은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예쁜 꽃에 눈 맞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 ❺ 이른 봄 꽃향기로 곶자왈 숲속을 채웠던 백서향도 씨앗을 퍼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➏ 최근 발견된 빌레나무.

 

 

숲을 빠져나갈 즈음 산악자전거팀을 만났다. 평탄하지 않은 곶자왈 숲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만큼 취미생활도 다양해졌다. 곶자왈 숲길을 거의 나오면 마을 외곽의 밭으로 이어진다. ‘친밭’이라 불렀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곶자왈 환경이지만 자갈을 줍고 가시덤불을 태워 농작물을 생산했던 곳으로 일종의 화전이다. 아직도 주변에는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고 농사를 짓고 있는 밭도 보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제주사람들의 강인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무릉 마을길로 접어들었으니 다 나온 셈이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할 듯하다. 최근 힐링이 바람을 타면서 숲을 산책하는 일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신평-무릉곶자왈도 제주의 다른 곶자왈 못지않게 자연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숲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숲으로 들어오는 순간 힐링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혹 숲길을 걸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 원시성으로 가득한 신평-무릉곶자왈은 어떨까 싶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한라생태숲 숲해설가)

포토그래퍼 / 오진권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