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해맞이 숲길”

해맞이숲길

 

해맞이숲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억센 잎을 가진 곰솔이 산행객을 반긴다. 시원하게 뻗은 삼나무숲의 공기가 싱그럽고 그 아래에는 큰천남성이 무리지어 의연하게 자라고 있다. 말찻오름 가는 길에는 낙엽이 지는 서어나무, 단풍나무, 졸참나무가 번갈아 이어지고 늘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참식나무, 새덕이도 간간이 눈에 띈다. 길게 쌓아올린 잣성에는 제주사람들의 흔적과 말찻오름의 작은 역사가 녹아 있다. 널따란 전망대 바위 위에서 맞는 해맞이는 장엄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품을 듯하다.

 

해맞이숲길1

❶ 해맞이숲길의 삼나무숲에 들어서면 시원한 공기에 매료된다. 풍성하게 내뿜는 피톤치드의 향기는 어느 숲에 못지않다. ❷ 편안한 숲길을 걷을 때는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이 생길지 늘 기대를 갖게 한다. ❸ 경사진 산길에 놓인 목책계단이 정겹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한마디 인사를 건넬  만큼 친근하다.

 

더운 여름이 오면시원한 숲길을 찾게 된다. 숲길 하면 삼나무 숲길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쭉쭉 뻗은 나무가 주는 시원한 느낌도 좋고 풍성하게 내뿜는 피톤치드의 상쾌한 향기도 어느 숲에 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삼나무가 좋은 숲길로는 절물휴양림의 장생의숲길, 한라생태숲의 숫모르편백숲길, 서귀포휴양림의 삼나무숲길도 있지만 최근 만들어진 붉은오름휴양림의 말찻오름 해맞이숲길(6.7㎞)도 이에 못지않다. 숲길은 붉은오름을 배경으로 휴양림이 터를 잡으면서 덤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교통도 비교적 좋은 편이고 몇 시간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어서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다. 해맞이숲길 외에도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는 건강등반로(1.7㎞), 상잣성 숲길(3.2㎞)도 있다. 각각의 숲길은 떨어져 있는 듯 서로 연결되어 있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걸어보면 좋을 듯하다.

해맞이숲길은 곰솔지대에 만들어 놓은 탐방로에서 시작된다. 비교적 넓게 길을 만들어 놓아 고즈넉한 맛은 없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가에 전시된 커다란 현무암 바위들은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하다. 곰솔지대가 끝나갈 즈음 삼나무숲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삼나무는 처음에는 빨리 자라는 특성 때문에 감귤밭에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로, 나중에는 오름이나 들판의 산림녹화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라산 높은 곳까지 삼나무가 심어져 제주에서 삼나무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로 인식되었다. 빨리 자라는 반면 이른바 피톤치드라고 하는 타감 물질이 많아 다른 식물들을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나무의 쓰임도 많지 않았으니 오죽하였을까. 하지만 최근 피톤치드가 사람의 몸을 좋게 한다는 웰빙바람이 불면서 삼나무숲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해맞이숲길 삼나무숲에는 독초로 알려진 큰천남성 군락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삼나무가 뿜어내는 강력한 피톤치드에도 큰천남성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큰천남성을 의지하여 살고 있는 큰개별꽃, 그늘보리뺑이와 그밖에 키 작은 풀꽃들. 사람들에게는 큰천남성이 독초이겠지만 연약한 풀들에게는 삼나무의 피톤치드와 바람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삼나무숲 지대를 벗어나면 서어나무, 단풍나무, 졸참나무가 있는 낙엽수림대이다. 그런데 기온이 높은 곳자왈에서나 보이는 참식나무, 새덕이 등 상록수들이 섞여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군락을 이룬 양하. 생각해보면 예전 오름 오르기를 할 때도 붉은오름 근처에는 양하가 많았던 것 같다. 양하는 열대지방에서 나는 식물로 향이 좋아 식용으로 절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첩첩산중까지 어떻게 옮겨와서 자라는 것인지 자연의 오묘함은 늘 경이롭다.

 

해맞이숲길2

❶ 해맞이숲길은 크고 작은 나무들로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에는 더 깊은 정감이 녹아있다.  ❷ 해맞이숲길 삼나무숲에는 큰천남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❸ 말찻오름 주변이 대규모 방목지였음을 알려주는 상잣성. 넓게 쌓아올린 돌담에는 제주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길게 쌓은 돌담이 보인다. 이곳 숲해설가의 이야기로는 잣성이라 했다. 정확히 잣성 가운데 상잣성이다. 잣성은 조선시대에 설치했던 목축문화의 상징으로 목마장의 경계에 쌓은 담장을 뜻하며 ‘잣’ 또는 ‘잣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잣성이 해안지대 농경지와 중산간지대의 방목지의 경계였다면 상잣성은 중산간지역의 방목지와 산간지역의 경계였다. 말이나 소가 숲이 우거진 한라산으로 들어가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인 것이다. 해맞이 전망대가 있는 말찻오름이 말을 방목하던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곳이 대규모의 말 방목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제주사람들은 오름을 터전으로 삶을 이어갔고 오름을 떠나서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안타깝게 뿌리 채 뽑혀나간 아름드리 곰솔과 졸참나무. 그리고 그 위를 덩굴식물이 감싸고 있다. 제주는 어느 곳이든 땅속에는 암반지대가 많고 흙이 깊지 않아 나무들이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것을 덩굴식물들이 줄기를 뻗어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시켜준다. 덩굴식물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나무들도 점차 키가 크면서 드센 제주바람을 견디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쉽지 않은 환경에도 말찻오름으로 가는 해맞이숲길은 더 우거진 숲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름 입구에 들어서자 이름도 재미있는 박쥐나무가 줄을 지어 산행객을 반긴다. 꽃잎을 살짝 뒤로 말아 올린 박쥐나무 꽃은 언제 봐도 귀엽다. 산수국도 꽃망울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금방 파란 꽃잎을 활짝 열어 숲길을 더 정취 있게 만들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산수국을 ‘도체비고장’, ‘도체비꽃’이라 불렀다. 산속 깊숙한 외진 곳에서 자라고 꽃의 색깔이 대부분 파란색 도깨비불을 닮아서이다. 산수국 하면 정지용의 백록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이에 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제주 사람들은 도깨비불을 닮은 산수국을 멀리한 반면 정지용은 인적이 없는 너무 외진 곳에서 살기 때문에 도리어 산수국이 무서워 파랗게 질렸다는 표현하고 있다.

 

해맞이숲길3

❶ 쪽동백나무는 바위를 의지하여 자라고 있고 이끼는 다시 나무를 덮고 있다. 이렇게 숲은 서로 의지하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❷ 꽃모습이 특이하고 잎의 무늬가 아름다운 무늬천남성.  ❸ 지반이 약한 오름에는 나무뿌리가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 있어 더욱 원시성을 느끼게 한다. ❹ 바위를 덮고 있는 한 무더기 이끼는 녹음 짙은 초여름을 더욱 싱그럽게 한다. ❺ 꽃 두 개가 나란히 피어 정겨운 호자덩굴. ❻ 나무 위에 피어난 버섯. 죽은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제주의 여느 오름처럼 말찻오름의 능선도 부드럽고 아름답다. 동쪽으로 터진 깊은 말굽형 분화구에는 원시림이 들어서 있고 키가 큰 나무 아래 다소곳이 핀 호자덩굴의 하얀 꽃이 시선을 끈다. 조금씩 동쪽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오름 정상에 다다른 모양이다. 해맞이 전망대라는 푯말이 없었으면 지나쳐 버릴 것 같은 초라한 넙대대한 바위. 이곳이 해맞이 전망대인 모양이다. 탁 트인 전경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쉽겠지만 그런대로 자연과 잘 어울린 모습이다. 해맞이는 늘 희망을 갖게 하는 느낌이 있어서 좋다. 이곳에서  다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 잡아볼 수 있다면 말찻오름 해맞이전망대숲길 산행은 꼭 동이 터오는 새벽이 아니어도 괜찮을 듯싶다. 오름 정상에도 큰 바위가 곳곳에 눈에 띈다. 10여 년 전 오름 오르기를 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바위 위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다.

내려오는 길 피어있는 산딸나무의 하얀 꽃으로 숲은 마치 한 여름에 흰 눈이 내린 듯하다. 산딸나무는 제주에서는 아주 흔한 나무이지만 특이한 꽃 구조로 인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모습이다. 경사진 산길 정겨운 목책계단에서 만나는 산행객이 반갑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인사 한마디씩은 건넬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친근하다. 오후 늦게 산속 외딴 곳에서 만나면 더욱 그렇다. 탐방로가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는 다시 삼나무숲이 나오고 길은 다른 탐방로인 상잣성길로 연결된다. 시간이 되면 상잣성길을 걸어보고 붉은오름 정상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말찻오름 해맞이숲길이 6.7km 정도 된다고 하니까 대략 3시간 정도 걸릴 듯하다. 자연을 즐기며 적당히 운동도 할 수 있으니 이만한 여가활용도 없지 않을까.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성권(1100고지습지 자연환경해설사)

포토그래퍼 / 강석민

촬영장소 /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남조로 1487-73    전화: 064-782-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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