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곶자왈과 잣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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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과 잣성

 

원시의 숲, 곶자왈에서 만난 잣성에서 제주인의 삶과 생활을 마주하다. 잣성은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영 말 목장이 운영되었던 제주의 목축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상징물이자 제주인의 삶을 고되게 했던 굴레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산섬 제주는 한 뙈기 땅이라도 귀하디귀하다. 돌투성이 땅을 일구다 나온 돌로 밭담도 만들고, 제주 섬 어디에서나 흔하게 뒹굴어 다니는 돌들을 쌓아 돌담을 만든 것이 ‘흑룡만리’라 부를 만큼 길게 이어지니 흙보다 돌이 많은 섬이라 할만하다. 푸석푸석 화산회토를 일구어 어렵사리 밭농사라도 지어 생활하였고, 곶자왈에서 땔감을 얻어 모진 바람이 불어대는 한겨울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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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가시덤불이 우거지고 돌덩어리와 푸르른 이끼가 뒤덮여 엉켜있는 곳을 이르는 순수한 제주어이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과 충분한 습도는 나무들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래서인지 곶자왈에 들어서면 우거진 초록의 숲과 고사리류들, 이끼 낀 바위들이 원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아마존이 점차 사라져가는 지구촌의 현실은 이곳 제주땅에서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의 허파이자 풍부한 지하수 함양원,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곶자왈은 천연의 숲이라는 의미에 더하여 제주인들의 삶과 어우러져왔던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간과 함께하는 숲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증거를 곶자왈 깊숙한 곳에서 우연찮게 만나는 잣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을 트레킹하다 보면 오름화구 안의 곶자왈 지역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돌무더기들이 쌓여 하나의 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잣성이다. 소와 말의 방목이 이곳 곶자왈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이다. 제주에서는 말이 다른 어떤 가축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아니 대우를 받았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말로 밭갈이도 하고, 마불림제 같은 행사도 하였으며,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말 사육에 정성을 기울여 농번기가 지나면 먹이가 풍부하고 모기나 빈대가 없는 서늘한 곶자왈로 들여보냈다가 늦가을이 되면 집으로 데려오곤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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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성”은 목마장 경계에 쌓은 담장으로 ‘잣’은 ‘널따랗게 돌로 쌓아 올린 기다란 담’을 이르는 말이다. 제주 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밭담과는 달리 그 쌓여진 모양새가 덥수룩하다. 크고 작은 돌덩어리를 척척 올려놓은 것이 소박하기 그지없다. 잣성은 15세기 초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쌓여진 기록을 전하고 있으며 중산간지대와 한라산 산림지대를 구분하는 상잣성, 그 아래 해발 400m내외에 중잣성, 방목중인 말과 소들이 해안지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해발 200m쯤에 하잣성을 쌓았다. 이렇게 쌓여진 잣성은 사람이 사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농경지와 방목지 등 생활상의 구분을 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하였다. 잣성은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영 말 목장이 운영되었던 제주의 목축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상징물이자 제주인의 삶을 힘들게 했던 굴레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라에 필요한 말을 키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흔히 방어의 의미로 성이 쌓여지는데 반해 잣성은 생활을 위해 쌓여진 특별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곶자왈이나 숲속을 지나다 만나게 되는 잣성은 단순히 돌덩어리를 올려놓은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 그냥 지나칠 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 속에 숲과 동화된 듯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는 제주인의 삶을 떠올린다면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게 될 것이고, 세월을 뛰어넘는 문화의 한 부분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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