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곶자왈과 용암동굴의 어머니, 거문오름

거문오름

빽빽히 자란 삼나무숲과 어두운 동굴 그리고 땅속에 나는 바람소리는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거문오름은 수십차례의 화산활동과 화산체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으로 인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등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완성시켰다.

 

거문오름 레터링

 

12월 거문오름 정상에는 결 고운 바람과 함께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다. 정상을 따라 봉곳봉곳 솟은 아홉 개의 봉우리는 거대한 분화구를 감싸고 있고 그 안의 알오름 하나가 정겹다. 전체적인 모습은 제주의 여느 오름이 주는 아름다운 곡선미 보다는 알지 못할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마을사람들은 알오름을 여의주에 빗대어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 하여 ‘구룡농주(九龍弄珠)’라 했다. 그리고 분화구 동북쪽에서 흘러내린 용암을 따라 만들어진 선흘곶자왈의 모습이 확연하다. 동백동산까지 이어진 폭 약 7km의 선흘곶자왈이 거문오름에서 시작됐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문오름(2013)003

 

거문오름서브

❶ 거문오름의 탐방은 삼나무 숲길에서 시작된다. 빽빽한 삼나무 숲속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편안한 느낌으로 숲길을 열고 있다. ❷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 사람들은 척박한 분화구까지 들어와 나무를 베어내고 농토로 만들었다. 훗날 산림이 보호되면서 농사를 짓던 그 자리에는 삼나무가 심어지고 지금의 삼나무숲의 원천이 되었다.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은 ‘신비스런’이란 뜻의 ‘검’에서 유래한다. 구좌읍에 위치한 검은오름과 구분하여 서검은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거문오름의 탐방은 삼나무 숲길에서 시작된다. 빽빽한 삼나무 숲속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이 숲길을 열고 있다. 오름 정상까지 나무데크가 만들어져 있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어서 급하게 오를 필요는 없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오름의 파노라마는 세상의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한다. 동쪽으로는 바로 앞에 서있는 체오름에서부터 멀리 일출봉까지 남쪽으로는 백록담이 바로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고 개오리오름, 절물오름, 민오름이 한라산을 향해 부복을 하고 있다. 날씨 좋은 날에는 제주의 오름 가운데 1/3 정도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왜 거문오름이 ‘오름전망대’라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을 따라 내려오면 억새밭이 펼쳐진다. 지금은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말의 방목이 금지되면서 억새가 점유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봄이 되면 파릇파릇 올라왔던 푸른 잔디도 볼만 했던 곳이다. 곶자왈과 목장의 경계를 알려주는 삼나무와 돌담을 지나면 분화구 입구이다. 분화구는 곶자왈의 시작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붉가시나무와 식나무, 붓순나무 등 늘푸른나무로 가득하다. 일반적으로 낙엽이 지는 나무가 많은 곶자왈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제일 먼저 분출한 용암이 분화구를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용암협곡을 만난다. 용암협곡은 1m 정도의 둑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나간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용암은 용암협곡뿐만 아니라 용암동굴의 천정이 무너져 내리면서 용암함몰구를 만들었다. 탐방로를 따라 가다보면 분화구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용암함몰구를 볼 수 있다.

 

 거문오름1

❶ 오름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어느 오름 못지않다. 한라산 백록담과 함께 제주의 동북쪽에 있는 오름을 대부분 조망할 수 있어 ‘오름전망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❷ 거문오름의 숲길에는 다양한 나무가 주는 피톤치드의 시원함과 새소리가 주는 편안함이 녹아있어 걷는 자체가 최고의 힐링이 된다. ➌ 일본은 패망하기 직전 제주의 곳곳에 진지동굴을 파고 박격포를 설치하고 미국과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거문오름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시 파놓은 진지동굴이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무너져 내리면서 켜켜이 쌓인 바위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든다. 지하로 들어간 물은 식수원의 원천이 되고 있지만 곶자왈의 습도를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바위틈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돈다. ‘풍혈’이라고 하는 바위 구멍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이다. 풍혈은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지형으로 일정한 온도가 있는 바람이 흘러나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게 한다. 이른바 ‘미기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기후는 같은 곳에 자라는 나무에도 꽃이 피는 시기를 다르게 하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데 바로 옆의 것은 꿈쩍도 하지 않은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겨울이나 여름철 깊은 숲속에서 느껴보는 이런 특별한 경험은 곶자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연평균 기온이 12도를 넘는 해발 200m 아래 지역에서 자라는 늘푸른나무인 붓순나무가 해발 350m가 되는 거문오름에서 볼 수 있는 것도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미기후의 영향일 것이다.

분화구 내의 일정한 습도는 새우난초 등 난초과 식물을 비롯해서 큰섬잔고사리, 지느러미고사리 등 양치류를 번성케 했으며 난대성 나무와 온대성 나무가 어울리면서 천연림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엉켜있는 덩굴성 나무들은 나무들을 쓰러지지 않게 하여 숲을 지탱해주고 있다. 척박함이 느껴지는 바위틈에서 사람이 주관하지 않아도 자연은 늘 한결같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문오름에는 숲이 만들어진 긴 시간에도 아름드리나무가 없다. 어쩌다 큰 나무가 보이기는 하지만 뿌리를 드러낸 채 바위를 휘감고 있거나 바람에 넘어져 있다. 곶자왈이 바위로 이루어지다 보니까 뿌리가 깊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해마다 잎을 내고 꽃을 피워낸다. 이것은 곶자왈이 습도가 높아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특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거문오름2

❹ 삼나무가 만들어놓은 초록의 숲길을 빠져나오면 낙엽이 지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이어서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더불어 숯가마터 등 문화적인 흔적들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❺ 거문오름은 선흘곶자왈의 시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원시성을 느끼게 하는 대형 고사리와 다양한 식물들이 있어 더욱 신비감을 갖게 한다. ❻ 거문오름 분화구 주변에서는 용암이 흐르면서 용암동굴을 만들고 그 천정이 무너져 내린 용암함몰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다른 곶자왈도 마찬가지지만 거문오름에도 큰 나무가 없는 것은 사람의 간섭이 클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가 숲을 보호하기 시작한 역사는 50여년 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봐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 이전 곶자왈은 특히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나무를 이용해서 집을 만들고 그곳에서 땔감을 구했다. 어떤 곳은 나무를 베어내고 경작지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것을 알려주듯 이곳에는 숯가마터와 머들을 볼 수 있다. 머들은 농경지를 개간할 때 쌓아놓은 돌무더기로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자리에는 훗날 삼나무가 심어졌다. 그리고 제주의 숯가마는 일반적으로 흙으로 만들어 일시적으로 사용했는데 탐방로변의 숯가마는 돌로 만든 돔 형태로 뒤쪽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어 항상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분화구 안에 나무들이 많아 정기적으로 숯을 구웠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문오름에 탐방로 주변을 비롯해서 오름 곳곳에는 10여개의 일본군 진지동굴이 있다. 이와 함께 분화군 안에는 병참도로와 주둔지터도 남아 있다. 패전을 앞둔 일본군은 제주도 곳곳에 진지동굴을 만들고 포를 설치하고 미국과의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비록 일본이 항복으로 제주도에서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아 큰 피해는 없었지만 전쟁 준비를 위한 희생은 고스란히 제주사람들의 몫이었다. 이렇게 거문오름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탐방로가 벗어날 즈음에는 다시 함몰구가 이어지면서 수직동굴을 만난다. 수직동굴은 용암동굴이 일반적으로 수평으로 발달하는 것과 달리 수직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이다. 입구 직경은 2~3m, 깊이 35m, 경사가 70~90도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굴은 형성될 때는 2층 형태의 용암동굴이었으나 1,2층 천정이 무너지면서 전체적으로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분화구 탐방로를 빠져 나오면 다시 억새밭이다. 넓게 펼쳐진 억새는 제주의 오름에서 보는 풍광이지만 금방 원시림에서 나와서 그런지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이렇게 신비스러움으로 가득한 거문오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그 가치는 만장굴, 용천동굴 등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신비스런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꼭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원시성의 천연림과 역사문화유적이 널려 있어 보존해야할 자산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사람의 간섭 없이 잘 보존되던 거문오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출입이 잦아지고 그로 인해 훼손이 우려된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하고 지금 모습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오롯이 물려줘야할 유산이라는 생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황정희

촬영장소 / 거문오름탐방

탐방시간 오전 9:00 – 오후 13:00 (매주 화요일은 자연휴식의 날) •사전예약 064)710-8981 (탐방 2일전 사전예약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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