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제주 올레 3코스 – 온평~표선 올레

올레3코스 메인

제주 올레코스 가운데 가장 느림의 미학에 가깝고 또, 가장 사람이 드문 온평~표선 올레.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어도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면 바로 이 길에서 제주의 속살과 소박하나 범상치 않은 제주 자연의 빛깔로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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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마라톤 거리인 20km에서 1.3km를 더한 올레장정의 길, 마을 안길, 밖 길 따라 요리조리 걷고 두 개의 오름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바다 위에 떠있는 목장과도 같은 신천바다목장과 드넓은 호수를 연상시키는 표선해비치해변은 광활한 제주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길고 긴 만큼 잔잔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제주의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시골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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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올레 3코스 초입에서 만나는 음식점 “꼬들꼬들 라면집” 벽면의 그림도 톡 쏘는 듯 재미있고 실내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라면류 음식점이다. ❷ 올레길에서 가장 반가운 올레표시, 가을 하늘이 벗하여준 3코스 올레. ❸ 마을 안길을 지나다보니 어느새 마을 밖 길이 나오고 요리조리 걷는 재미가 있다. ❹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으로 보낸 2기까지 총 47기의 돌하르방이 재현되어 있는 집, 올레를 걷는 이들이 호기심에 안으로 따라 들어가 구경해도 오케이!

 

온평포구가 올레 3코스의 시작점이다. 혼저옵써예(어서오세요), 온평리 주민들이 따뜻하게 반기는 맘이 느껴진다. 온평리는 고·양·부 탐라 개국신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로 삼신인이 이곳 온평리에서 벽랑국 삼공주를 만나 혼례를 치렀던 곳이다. 성산일출봉으로 해가 떠오르고 그 동남쪽에 자리한 온평리에는 온화한 아침 햇살이 비친다. ‘멀껑 열운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마을에 오름이나 냇가, 계곡이 전혀 없이 밋밋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온평리’는 따뜻하고(溫), 산이 없고 평평하다(平)하는 의미이다. 이렇듯 굴곡이 없는 자연과 개국신화 태동의 여운인지 온평리는 장수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포구는 한가롭고 올망졸망 방파제 둑을 따라 쌓아놓은 제주 자연석 돌탑들이 투박하나 제주적 정취를 풍긴다. 포구 옆에는 마을의 생명수와도 같았던 솔베기물(용천수)이 있다. 3코스 시작점인 포구에서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보냈다. 볼거리, 관심거리가 많은 탓이다. 앞으로 걸어갈 21.3km의 대장정을 생각하면 서둘러야겠다. 포구를 따라 옛날식 등대인 도대불을 지나면서 바다를 바라본다. 은근히 바람이 세 파도가 너울거리고 갯바위에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생명을 의지하는 테왁 몇 개가 보인다. 바닷가는 어디나 해녀들의 일터, 이곳 온평리는 반농반어의 마을로 밭을 돌보다 때를 맞춰 부리나케 바다로 일하러 나가야 했던 제주의 어머니, 해녀들의 모습이 평범했던 마을이다. 하늘과 구름이 이보다 가을스러울 수는 없다. 긴 시간 걷고 또 걸어야 할 터인데 저 구름들이 벗이 되어 주리라 싶으니 설렌다. 하늘과 바다에 시선을 주다 대숲 앞에 다소곳이 서있는 중산간 마을로 올라가는 올레표시를 자칫 놓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유니크한 느낌에 시선이 딱 멈추고 마는 꼬들꼬들 라면집, 벽면의 웃음기 가득한 해녀그림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외롭다 못해 걷고 싶었고, 그 길이 3코스였다. 초입에서부터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마을 안길을 지나면 마을 밖 길이다. 사람의 흔적이 드물고 굽이굽이 이어진 돌담과 그 위를 타고 넘는 하늘타리, 계요등, 둥근잎유홍초, 송악 등이 보이고 돌담 아래에는 달개비, 애기나팔꽃이 가을볕을 쬐고 있다. 길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그들의 작은 손짓에 마음자리에 작은 꽃 한 송이를 피운 느낌이다. 조금 더 걸으니 그저 돌하르방이 좋아 저 멀리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 보내어진 2기까지 총 47기의 돌하르방을 본떠 집 안마당과 감귤 밭가에 세워놓은 돌하르방이 있는 감귤과수원집이 보인다. 3코스를 걷다가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는 이집을 발견하면 돌하르방을 따라 꼬물꼬물 따라가 보자. 제주시의 것과 정의, 대정의 돌하르방이 다른 모양임도 발견하고 숲가에 숨어있는 동자석을 만나다 보니 또 얼마간의 시간이 후딱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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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통오름의 분화구 둘레를 따라 걷다 만나는 시원한 제주풍경, 억새의 물결침이 멋스럽고 한라산과 가을하늘이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든다. ❷ 제주를 너무나 사랑했던 김영갑의 작품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 두모악, 여행자들이 꼭 들러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갤러리 입구의 조형물. ❸ 지난 여름 키가 크게 자랐던 갯강할이 생명을 다하여 그 흔적만 남기고 있는 제주바닷가

 

3코스 완주 예상시간은 6~7시간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 시간에 도착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올레걷기가 서둘러서 걷는 속보여행이 아닐 터인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꼬닥꼬닥 다시 걷는 발걸음은 여전히 느리다. 한참을 마을 외곽을 돌다보니 나지막한 오름이 나타난다. 3코스에 있는 두 개의 오름 중에 첫 번째로 만나는 통오름이다. 통오름은 가을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할 만한 오름이다. 억새의 물결침이 멋스럽고 분화구 둘레를 따라 걸으며 만나는 한라산과 제주 풍경이 장쾌하기 짝이 없다. 첫걸음부터 나의 머리 위를 지켜주었던 구름들은 이곳 통오름의 하늘에서도 시원스레 그림을 그린다. 통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오름이 두 번째 오를 독자봉이다. 이름처럼 홀로 떨어져 있어 외롭게 보이는 오름이다. 울창한 숲에서 조금은 서둘렀던 올레걷기로 흘렸던 땀을 식힌다. 오름에서 내려와 마을을 통과하여 닿은 곳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곳을 지나기 위해 더 멀리 돌아오고, 더 제주의 속살을 느꼈던 것일까. 너무나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의 바람을 사랑한 영원한 청년작가, 김영갑의 작품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아름다운 갤러리이다. 즐거운 농수산에서 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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❹ 두모악에서 나오면 바다를 향해 방향을 잡는다. 저 길 끝에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❺ 목장 길이 하늘 끝까지 이어질 듯 풀밭과 바다,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다. ❻ 바다목장이 끝나면 갯바위 가득한 해안가 길이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벗 삼아 길을 재촉한다. ❼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가을 오후를 즐기는 여행자는 여유롭다. ❽ 햇살이 좋은 가을날에는 그림자놀이마저 재밌다. ❾ 표선해비치해변의 고운 모래사장과 밀려오는 파도는 여행 추억의 한 페이지

 

오전 9시에 출발하여 현재 시간 1시 30분, 배고파서 더 이상은 못갈 지경에 단비와도 같은 음식점이다. 올레꾼들의 발길이 잦은 쉼터처럼 많은 이들이 후루룩 식사를 하고 길을 재촉하며 흩어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다시 나선 발걸음은 곧 마음까지 뻥 뚫어줄 바당올레가 나오리란 기대감에 가벼워진다. 어느 순간 집, 길, 나무들은 모두 다 사라지고 끝없이 넓은 바다만이 시야를 채운다. 가을빛이 짙어진 바다는 철썩철썩 뭍을 향해 손짓을 한다. 이제부터 3코스의 백미인 신천 바다목장이다. 초원과 바다의 조화라니, 넓은 목장에 말과 소는 한가롭고 더 넓은 바다에 갈매기는 여유롭다. 목장 길이 하늘 끝까지 이어질 듯 풀밭과 바다,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다. 꽉 막힌 도시생활의 팍팍함이 시원하게 바람구멍을 내는 순간이다. 풀밭 위로 깡총 뛰어 하늘로 손을 뻗어 보고, 바다를 향해 소리쳐 가슴을 연다. 파도소리에 묻히는 내 목소리처럼 사람은 이렇듯 거대한 자연 앞에 작은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장길을 나오면 신천리 마을 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소낭밭 숲길이다. 초원과는 또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에 부풀었던 가슴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마지막 종착역인 표선해비치해변이 멀지 않았다. 물때가 맞아서 해변의 모래사장을 가로질러서 걸어갈 수 있었다. 앞서 간 이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고운 모래밭길을 타박타박 걸어간다. 동네 아이들의 천진한 모래놀이에 작은 미소를 띠며 코스의 마지막 지점을 향한다. 도착 5시 30분, 장장 8시간 30분의 여정이었다. 예상 소요시간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참 잘 걸어왔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마음 다스리기에 이만한 코스가 있을까. 자연에 대한 감동은 잔잔하고 자신에 대한 돌아봄은 여유로웠다. 3코스에서 만난 토닥토닥 마음을 위로하는 작은 위안거리들에 앞으로 보낼 하루하루는 충분히 힘을 얻게 되었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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