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특집] 섬, 바람 그리고 꽃길 – 꽃길 (올레16코스)

꽃길1

꽃길

흐드러진 봄날의 절정, 꽃길

 

연보라색 들꽃이 카펫처럼 펼쳐진 수산 저수지 둑방, 곳곳에서 만나는 샛노란 유채꽃밭, 벚꽃이 하얀 눈처럼 흩날리는 올레 16코스. 봄날의 절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꽃길’ 올레 16코스를 걸어보자.

에메랄드빛 바다와 입맞춤 제주의 봄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겨우내 성난 사자처럼 포효하던 파도가 제법 잔잔해지는 3월 즈음, 제주의 바다는 에메랄드 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아직 발은 담그기에 이른 감은 있지만, 보는 이를 당장이라도 풍덩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제주의 봄바다는 여름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여름바다 특유의 비릿하고 짠 내음 대신 청량함과 달큼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는 아마도 남태평양 너머로부터 봄 향기를 싣고 와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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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노란색 외관의 로드카페 ‘망고레이’는 100% 망고로 갈아 만든 스페셜 망고 셰이크가 인기메뉴이다. ❷ 에메랄드빛 봄바다는 청량함이 가득하다. ❸ 고내-신창 해안도로는 근사한 드라이브 코스지만 시원한 바다를 천천히 바라보며 걷기에도 좋다.

 

 꽃길지도

 

16코스는 봄 내음을 물씬 느끼게 하는 푸른빛 바다에서 시작한다. 몇 척 안 되는 통통배가 귀엽게 느껴지고 아담한 등대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고내포구에서 출발해 신엄포구를 지나 남두연대, 구엄리 돌염전까지 약 5km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따라 걷는 ‘해안도로’ 코스다. 바다가 그리워 북적이는 도시를 떠나 제주까지 날아왔다면, 16코스만큼 좋은 코스도 없으리라. 단, ‘봄볕은 며느리 쪼이고 가을볕은 딸 쪼인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선크림과 모자는 필수다. 특히 바닷가에서는 금세 벌게지고 화끈거리기도 하므로, 걷기 전 반드시 중무장 하고 출발하도록 하자.

따스한 봄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이고 시원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고내-신창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제주 바다를 품에 안은 이만한 올레길이 또 있나 싶다. 해안도로 곳곳에는 봉고차를 개조한 이동식 카페도 많으니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와 함께 하는 휴식도 16코스가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봄바람은 꽃향기를 타고 고내포구에서 구엄리 돌염전까지가 ‘해안도로’ 코스였다면,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꽃길’ 코스가 시작된다. 구엄리 어촌체험 마을센터에서 마을로 꺾어 들어가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물메오름’이라고도 불리는 수산봉은 높이 122m의 아담한 오름으로, 수산봉을 빙 둘러 걸으면 이름 모를 봄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산봉 둘레길을 따라 내려오면 곰솔이 기다린다. 높이 10m, 둘레 4m로, 두 세 명이 팔로 둘러도 감싸 안기 힘든 거목이다. 눈이 내려 나무를 덮으면 마치 백곰이 저수지 물을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곰솔이라고 이름 붙은 수호목(守護木)을 껴안으며 늠름한 정기(精氣)를 듬뿍 받아본다. 곰솔을 지나면 수산리 저수지 옆으로 벚꽃나무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에 비바리(아가씨)들 마음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은 인지상정! 핑크빛 이파리가 눈꽃처럼 날릴 때마다 어쩐지 봄이 성큼 떠나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두보(杜甫)는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 바람에 수많은 꽃잎이 날리니 참으로 시름에 젖는구나(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點正愁人)’라고 시를 지었나보다.

수산리 저주지 둑방은 온통 연보랏빛이다. 둑방 위는 키 작은 들꽃들로 가득하다. 행여나 밟을까, 발끝에 조심성이 붙는다. 이 많은 꽃들은 봄이 온 걸 어떻게 알고 잎을 틔운 것일까. 새삼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며, 바람에 퍼지는 향긋한 봄기운을 힘껏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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❹ 수산리 저수지 둑방에는 연보랏빛 들꽃이 나지막하게 피어있다. ❺ 두세 명이 가득 품에 안아도 모자라는 곰솔이 늠름하게 서 있다. ❻ 수산리 저수지 둑방이 끝나는 지점에는 찹쌀과 은행 등을 연잎에 곱게 싼 연잎밥이 유명한 물메골이 있다. ❼ 올레16코스의 마지막은 흐드러진 벚꽃으로 마무리 된다.

 

흐드러진 봄날의, 벚꽃엔딩 수산리 저수지를 지나면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로 들어선다. 항몽유적지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으로 옆으로는 샛노란 유채꽃밭이, 길 위로는 허리를 내민 고사리가 지천이다. 제주의 봄은 유채꽃만큼이나 고사리가 유명하다. 오죽하면 제주에서는 봄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를까. 봄이면 쑥쑥 크는 고사리는 항목유적지에서도 제법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갈 겸 허리를 숙여 고사리를 캐기 시작한 지 십여 분도 채 되지 않아 한 움큼이나 쌓인다. 고사리 뿐 아니라 쑥도 천지다. 나물 캐는 아가씨가 된 양 쑥이며 고사리를 신나게 뜯는 것도 16코스에서만 즐기는 재미다.

이제 고성숲길로 들어선다. 큰 경사 없이 평평한 길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삼나무, 편백나무가 늘어서 걷는 동안 삼림욕을 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길에, 형형색색으로 핀 향긋한 꽃길에, 상쾌한 삼림욕에…. 이만한 호사를 누릴 올레코스가 또 있을까.

숲을 빠져나온 길은 마을로 들어선다. 종점인 광령이다. 광령은 벚꽃 핀 봄날, 연인들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코스로 유명한 곳. 봄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연분홍 꽃잎이 설탕가루처럼 흩날려 아찔한 기분이 든다. 곧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에 도착한다. 리사무소 앞에서 길을 돌아보면 벚꽃 잎이 유성(流星)처럼 쏟아져 온통 핑크빛이다.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라는 가사 그대로, 16코스의 마지막은 흐드러진 봄날의 ‘벚꽃엔딩’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유민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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