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바람, 오름 그리고 바다 – 올레12코스

12코스-1

12 Course

겨울날의 제주올레 12코스에 함께하는 벗

바람, 오름 그리고 바다

 

느리게 걷다가 세 친구를 만났다. 바람, 오름, 바다….  그 바람을 대할 때는 흔들리는 돌 조차도 걷는 이를 반기는 듯하여 정겨웠으며 오름을 오를 때는 그 안의 풀과 나무가 흔들림을 마음껏 느끼도록 허락하는 오름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바람을 만난 바다는 한껏 위로 솟아오르며 살아있음을 표현하였다. “바람을 찍어봐.” 그렇게 형태 없는 바람을 찾아 끝까지 걷게 된 어느 겨울 날, 바람·오름·바다라는 세 친구의 모습을 담은 제주올레 12코스 무릉~용수 여행.

나뭇가지와 바다, 파도, 오름에 묻어난 바람이 곳곳에서 카메라 앵글에 잡혔다. 두 눈이 렌즈가 되어 기억이라는 필름에 강하게 남아 그 날의 여정을 떠올리는 것으로 인화되는 제주올레 12코스. 그 곳에서 만난 바람과 오름과 바다의 기억들…….

 

 

12코스_11

 

 

바람과 함께하다

겨울날의 제주올레 12코스에서 먼저 만난 벗은 바람이었다. 바람을 만나기 전에는 무릉 생태학교에서 출발하여 계속되는 농촌의 정취가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밭마다 한두 그루씩 보이는 나무들이 여름날 농부의 땀을 식혀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걷다보면 도원연못으로 가는 동안 길에 쌓인 낙엽과 땅에 붙어있는 시든 풀들이 흔들릴때 어느 순간 바람이 동행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화산섬이라 물이 괴지 않아서 밭에다 벼를 심은 밭, 즉 산디밭을 지나면 도원연못을 관망할 수 있는 소나무 사이의 풀밭에서 바람은 귓가에 “휭~” 소리로 존재감을 알리는 듯하다. 바람은 소리로도, 풀에 붙어서도, 마농밭에도 존재한다. 철새들이 날아와 추운 겨울을 나는 도원 연못에서 밭길을 따라 내려가면 또 다시 나타난 낮은 돌담들이 어느 구간에서는 돌 한 줄 만으로, 어느 구간에서는 세 줄을 쌓아도 겨우 무릎만한 높이로 바람이 밭에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밭이 거부한 바람은 올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쉽게 따라 붙어 함께 하는지도 모른다. 이 바람은 12코스를 걷는 내내 여러 장소에서 현악기의 울림처럼 “씽~”하는 소리로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걷는 내내 MP3 등으로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다. 마치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서처럼 바람은 그 자체로 음악가가 되고 풀들은 바람의 연주에 소리를 내는 현악기가 되어 자연의 음향으로 연주하는 듯, 소리의 향연에 미소가 지어진다.

 

12코스25

 

오름에 오르다

이윽고 눈앞에 12코스의 2번째 벗인 농남봉이 다가온다. 겨우내 남아있는 주홍서나물과 도깨비바늘 같은 야생초를 보며 기뻐하는 것도 잠시, 타이어매트가 깔려 있어 생각보다 편하게 오르다 보면 정상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마라도, 군산, 다래오름, 모슬봉까지 무릉리가 위치한 대정읍·안덕면의 오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 펼쳐진 밭들은 무릉리의 반대쪽인 제주올레 1~3코스 지역인 성산~표선에서 보던 것들에 비하면 매우 넓은 평야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간 듯 흙길임에도 잘 다져져서 걷기 편한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이 정도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라는 쑥이나 개망초, 강아지풀 등이 보이는 것으로 농남봉 산행이 끝나게 된다. 길은 잘 다져져 있지만 주말에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한적한 길이다. 12코스에는 농남봉 말고도 오름이 2개 더 있다. 수월봉과 당산봉이 그 것이다. 계단식 산디밭 사이를 오르는 재미로 수월봉 꼭대기까지 오르면 차가 다닐 수 있는 길과 이어진 고산기상대 옆으로 역시 관람객들이 “전망 좋다!”라고 감탄하는 경관이 펼쳐진다. 차귀도, 죽도, 눈섬, 단산봉, 산방산, 한라산이 훤히 보이는 비경이다. 12코스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오름인 당산봉에는 ‘간세 표시’를 따라 옆길로 빠진 후 정상 즈음에서 발 아래 보이는 바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절벽 아래로 새들이 무리지어 나는 황홀함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있다. 이 멋진 절벽이 오름 아래로 내려올 때 멀어진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바로 12코스에서 만나는 세번째 친구, 바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름을 지난 뒤 이어지는 바닷길, 바닷길을 걸은 후에 나타나는 각각의 포구들 또한 이 코스의 묘미이다.

 

올레1 copy

 

바다와 말하다

바닷물을 코앞에 두고 맨들맨들한 돌들로 이루어진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파도가 강하면 도원횟집 앞의 신도 해안에서는 갯가가 아닌 도로 쪽으로 우회해야 한다. 바닷바람이 거센 날, 밀려오는 바닷물에 얼굴을 맞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신도 바다를 바라보면 이번에는 바람과 친구하는 바다의 묘미를 즐길 수도 있다. 청량감을 줄 만큼 우윳빛 거품이 이는 파도가 돼지 먹이통과 닮았다는 갯가의 ‘도구리’를 덮치고, 바위에 붙어 자라는 우묵사스레피 나무나 소나무도 바람이 치고 가도록 납작하게, 키 작게 자라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월봉에서 엉알길을 따라 내려가 만나는 바다도 특히 겨울날 기억에 남을 만하다. 때때로 햇빛을 받으면 황금빛으로도 변하는 바닷물의 색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밭벼를 생산하는 이 지역, 고산 일대에서 산디가 익을 때와 비슷한 빛깔이다. 단지 익은 산디의 색에 수채화처럼 바닷물의 투명함이 배어든 것일 뿐……. 황금빛 바다 앞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태고 적의 신비를 간직한 절벽층과 그 옆을 지나는 굽이진 바닷길이 있다. 이 하얀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금세 오징어를 대규모로 널어 말리는 자구내 포구가 나타난다. 바닷바람으로 말린 오징어를 판매하는 소규모의 판매대들이 줄지어 있고, 잠수함과 배낚시 체험이 있다는 점 등이 자구내 포구의 특징이다.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포구인 용수 포구는 촉촉히 비가 내렸을 때 그 운치 때문에 계속 머물고만 싶어지는 곳이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사람들이 찬탄하였다는 전설의 절부암이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수 포구에서 바닷바람은 풍력발전기를 돌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역시 바람은 바다와 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바람과 오름, 바다…. 다시 보려면 겨울이 가기 전에 찾아야 하는 것일까….  바람 부는 날이면, 멀리 바다나 오름이 보이는 날이면 12코스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떠오를지 모른다. 그 풍경들은 기억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리워진다.

 

12코스 지도

 

코스 경로 (총 17.5km, 5~6시간)

무릉생태학교 ▶ 평지교회 2.5km ▶ 신도생태연못 4.2km ▶ 농남봉 정상 5.5km ▶ 산경도예 6.2km ▶ 신도포구 9.4km ▶ 수월봉 정상 12.5km ▶ 엉알길 입구 13.3km ▶ 자구내포구 14.6km ▶ 당산봉 정상 15.3km ▶ 생이기정 16.1km ▶ 용수포구 17.5km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Tip. 12코스는 먹거리가 별로 없는 코스이므로 김밥이나 간식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8.2km 지점에 있는 도원횟집 TEL:011-639-4119 高관심해장국(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TEL:064-772-2825(해장국, 김치전골)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1 Comment

  1. 김배냇 says

    잘 읽고 담고,
    갑니다.
    가봐야지
    싶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