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아늑하고 소담한 길 위, 봄이 기지개를 펴다 – 올레 5코스

올레5코스1

 

아늑하고 소담한 길 위, 봄이 기지개를 펴다

올레 5코스

 

이 겨울이 언제나 끝이 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렸던 계절, 삭막한 도시에서는 꽁꽁 숨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봄. 그 봄은 올레 5코스에서 사람들의 웃음으로 따스한 바람으로 수줍게 인사하는 생명으로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올레5코스합성

남원 큰엉 경승지는 올레 5코스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기암괴석에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시가 있는 낭만적인 올레길

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시작된다. 남원포구는 동네의 정취와 닮아 아담하고 귀여운 느낌이다. 포구에서 해안가를 따라 쭈욱 걷다보면 5코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으니 해안도로를 따라 음각으로 새겨둔 글들이다. 세계의 격언도 있고 제주출신 시인의 시도 있으며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의 가슴을 울리는 말도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따라 읽으며 천천히 해안가를 걷노라면 나는 시 한 구절에 가슴 설레던 웃음 많고 눈물 많은 단발머리 여중생이 된다.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시와 함께 걷는 올레, 이 얼마나 낭만적인 길인가!

 

 

그 숲에는 파도소리가 들리네

포구를 지나 만나는 남원 산책로는 제주도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다. 금호리조트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지나면 드디어 남원 큰엉 경승지이다. 이곳은 5코스에서 가장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기암절벽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한다면 그 장관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내려가서 그 멋진 광경을 직접 보는 것도 좋다.

약 5-6시간 이어지는 5코스는 수많은 매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딱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숲속에서 파도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특별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5코스의 백미는 단연 숲길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듯 나무들이 둥글게 감싼 숲을 걷는 동안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귓가에 쉼 없이 들려와 지금 내가 숲길을 걷는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숲속에 들어간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보자. 해안에서 들었던 파도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 온 몸을 감쌀 것이다.

소박하고 정겨운, 그리고 포근하고 작은 길 큰엉 경승지를 거쳐 금호리조트를 지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은 올레길로 들어선다. 해안길, 마을길, 밭길, 숲길이 계속해서 이어져 걷는 동안 지루할 틈 없이 없다는 점도 5코스만의 매력이다. 오소록(‘숨겨진 아늑한’이라는 뜻의 제주방언)한 길은 걷는 내내 편안하고 포근한 기분을 선물해 마음이 따뜻해진다. 수확이 끝난 밭에 퇴비를 뿌렸는지 코를 얼얼하게 하는 자연의 냄새(?)에서, 새들이 먹을 수 있게 귤을 하나씩 남겨놓은 밀감나무 밭에서도, 대문도 없는 이 소박한 마을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것은 걷는 동안 내 마음이 활짝 열렸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작고 아늑한 길은 코스가 끝날 때 까지 보드랍고 편안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올레5코스052

동백동산의 돌담 위 누군가 올려놓은 빨간 동백꽃이 정겹다.

 

 

반갑게 인사하는 봄의 손님들

위미리에 접어들면 동백나무 군락지가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수령이 오래된 토종 동백나무들은 방풍림(밀감나무를 바람에 보호하는 나무)의 역할을 한다고 전해진다. 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 길은 레드카펫을 연상케해 그 위를 걸으면 마치 여배우가 된 기분이다. 동백은 겨울에 폈다가 봄이 시작되면 지는 꽃이기에 생명을 다 하고 떨어진 붉은 동백을 보며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동백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동박새 소리에서도 다소곳이 머리를 내미는 이름 모를 봄 야생화에서도 새로운 계절의 환희가 느껴진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언제부터 이렇게 포근했고 햇살은 또 언제 이렇게 따사로왔던가. 봄은 올레길에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내비치고 있었다.

 

 

자연의 신비를 느끼며 걷는 길

동네길을 지나 바닷길로 들어서면 지귀도가 아스라이 펼쳐지고 섶섬과 문섬이 가까이 보인다. 바닷가 앞에는 수천 년 전부터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을 검은 암석들이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간 각양각생의 모양새가 새삼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공천포 앞바다는 쉽게 보기 힘든 새카만 모래밭이다. 아까 지나온 커다란 암석들이 파도에 부딪치고 바람에 깎이고 또 깎여, 수천 수백년이 지나 이렇게 잘게 부스러졌으리라. 뾰족하고 날카롭던 암석이 둥근 자갈이 되고 보드라운 모래가 된 것처럼 내 마음도 세월이라는 파도와 바람을 맞는다면 더 둥글고 맨도롱(‘따뜻하다’라는 뜻의 제주방언)해질 수 있겠지?

 

 

5코스-1

❸ 남원 큰엉 경승지 안으로 직접 내려가 보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자연의 신비함에 감탄하게 된다.  ❹ 공천포 앞바다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검은 모래가 장관을 이룬다.

 

몇 번 더 마을길과 오솔길, 숲길과 밭길을 지나면 드디어 종점인 쇠소깍이다. 이전까지의 길이 한적했다면 쇠소깍에서는 넘치는 관광객들로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쇠소깍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절경을 이루는 관광명소로 물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짙푸른 초록빛을 자랑한다. 그 푸른 물 위를 느리게 떠다니는 제주전통배 테우에는 관광객이 한가득이다. 이 못에는 용이 살고 있어 시끄럽게 하거나 돌을 던지면 용이 노한다고 하니 주의하도록 하자.

쇠소깍 앞 휴게소에서 짐을 내려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데 언제부터인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는 대지에 스며들어 곧 새 생명을 싹틔우고 화려한 빛깔로 온 세상에 꽃을 피우겠지. 올레길 여정의 피곤함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설렘으로 바뀐다. 그렇게 2012년 새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5코스-2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유민

포토그래퍼 / 오진권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