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말(馬)이 통하는 유쾌한 도예가, 장근영씨

장근영1

말(馬)이 통하는 유쾌한 여인

흙으로 조랑말을 빚는 도예가

장 근 영

 

그림자-1

천진난만한 소녀가 빚어낸 말은 작은 몸집에 다리도 짧지만 섬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는 어딘가 경쾌하다. 오색빛깔 환상적인 색조의 말들은 힝힝하는 울음 대신 휭휭하는 바람을 타고 푸른 초원을 시원하게 누빈다. 흙으로 빚어낸 조랑말에는 넉넉하면서도 강인한 제주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도예가(장근영)14

 

어린 날의 벗 죽마고우

잔잔한 파도가 정겨운 남원읍 비원포구 근처, 담쟁이 넝쿨이 늘어진 이름 없는 공방에 들어서자 장근영 도예가가 흙으로 무언가를 빚고 있다. 몇 번을 조물닥 거리니 말 한 마리가 뚝딱 만들어진다. 뭉툭한 다리 그리고 큰 얼굴과 볼록 나온 배, 배시시 웃고 있는 입 꼬리가 어쩐지 정감이 가는 제주 토종마이다. 찬찬히 작업실을 둘러보니 오밀조밀 만들어낸 크고 작은 말들이 가득하다. 그녀에게 말은 유년시절 친구이자 추억이나 다름없다. 수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장에서 뛰놀았고, 집에는 온통 제주 마에 대한 자료가 쌓여있었다. 제주마문화연구소장인 장덕지 씨는 그녀가 홍익대 도예가를 진학하자 제주마에 관한 자료를 건네주며 말을 빚어보면 어떻겠냐고 슬그머니 권하였고, 가끔씩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아버지께 말을 만들어 선물하면 너무나 좋아하셨다. 불가리아 유학시절에는 아예 말을 주제로 해서 논문을 내기도 했다. 제주에 돌아와 그녀가 말을 빚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맛깔나는 천태만상 제주마

손맛 가득 배어있는 그녀의 말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고개를 뻣뻣이 들어 휘잉~ 노래를 부르는 말,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업고 뛰노는 말, 곱게 꽃단장을 한 새색시 같은 말, 둥글둥글 순박하기 그지없는 하얀 말, 당근을 물고 신나 보이는 말 등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다. 짧고 굵은 다리, 알록달록 곱게 칠해진 몸뚱이, 바람에 흩날리는 갈기는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가 금방이라도 손으로 빚어낸 것처럼 다정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조랑말은 키가 작지만 몸은 다부져서 무거운 짐도 거뜬히 싣고 다녔어요. 매일 32킬로미터씩 22일간 행군해도 견딜 만큼 굽이 치밀하고 견고합니다. 무엇보다 말의 착한 눈이 너무 좋아요. 성격도 얼마나 온순하고 착한지 사람을 참 잘 따르지요.” 그녀의 제주말 예찬에서 말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사랑을 듬뿍 받은 그녀의 말은 어쩐지 항상 웃는 얼굴이다. 더욱이 무적의 태권브이로 변신한 말, 말 머리가 2개인 말, 3층 5층 겹겹이 쌓아 곡예를 부리는 말탑 등 기발함으로 무장하여 저도 모르게 말 따라 웃음이 툭 터진다.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도예를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친근하고 재밌게 표현한 그녀의 열정 덕에 작품 하나하나가 더욱 맛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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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그녀의 작업실에는 크고 작은 말들이 빼곡히 메우고 있다. 가만히 보면 각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❷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그녀의 말은 언제나 배시시 웃는 얼굴이다. 그 모습을 따라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   ❸ 몇 번을 조물닥거리니 그녀의 손에서 또 하나의 조랑말이 탄생한다. ❹ 그녀의 작업실 바닥에 있던 타일들. 작업을 하다 남은 자투리 흙으로 만든 타일이 모여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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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숨결을 손으로 빚다

제주의 젊은 작가인 몇차례 개인전을 가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제주의 땅과 바람, 햇살 속에서 전해지는 느낌과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도예작품에 담아낸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갈기에는 오름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고, 추켜올린 커다란 콧구멍에는 제주의 바람을 맛 볼 수 있다. 알록달록 고운 빛깔은 제주의 아름다운 색을 닮았다. 가라(검은말)는 검은 회청색의 돌담길을, 유마(갈색)는 오름과 들판을 수놓은 누런 억새를, 적마(붉은마)는 이글거리는 붉은 화산송이를, 월라(얼룩말)에서는 하얀 모래사장에 유난히 검은 현무암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청량한 옥색의 여름 바닷가, 신혼처럼 화사한 노란 유채꽃, 희끗한 할머니 머리같은 한라산 눈꽃 등 때깔고운 제주의 색을 형형색색으로 곱게 칠하여 생명력 넘치는 제주마를 만들어낸다. 제주에 태어난 여인은 작품 안에 제주의 숨결을 불어넣고 다정한 목소리로 두런두런 제주를 얘기하고 있었다.

 

말(馬)이 통하는 유쾌한 도예가

그녀는 말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과 마주한다. 정기적으로 연 갤러리에서 그녀의 말들을 선보이고 있고, 해마다 갤러리 노리에서 이명복 작가와 함께 ‘말(馬)’ 기획전을 열고 있다. 특히 말 기획전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말 그림 작품도 함께 내걸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말을 빚을 때 늘 생각합니다. 만드는 이가 행복해야 보는 이도 행복하다. 자연을 벗 삼아 제주를 표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제겐 큰 기쁨이고 그게 보는 사람에게도 전해진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죠.” 이번엔 어떤 말을 만들까 재미있는 궁리에 빠져사는 그녀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제주의 모든 것을 소재로 삼고, 유약의 색감과 재질을 세심하고도 다채롭게 입히며, 입체, 부조, 회화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벌써부터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건 어디로 튈지모르는 유쾌발랄한 그녀의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 왠지 모르게 축축 쳐져 긍정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주저 말고 그녀의 말을 만나러 갤러리 산책을 떠나야겠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강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촬영장소 / 갤러리 노리 :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91 (064-772-1600)

연갤러리 : 제주시 이도2동 680-4 (064-757-4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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