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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른구덕 만드는 여인, 오양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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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른구덕 :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바른 구덕이다. 구덕이 오래되어 헤어지면 그 곳을 헝겊이나 종이로 안팎을 두 세번 발라 사용했다.

 

 

조냥정신의 아름다움을 입히다

풀바른구덕 만드는 여인, 오양숙씨

 

‘조냥’이란 제주도 방언으로 ‘절약’을 뜻한다. ‘조냥정신’이라 하면 검소한 생활은 물론이고 필요한 것은 자연에서 얻어 다시 재창조하는 지혜까지 아우르고 있는 말이다. 버려지는 구덕과 자투리천으로 ‘풀바른구덕’을 만들어 이를 생활 속에 녹여내는 제주 여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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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바른구덕,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구덕은 제주도 말로 바구니를 뜻한다. 그런데 풀바른구덕은 무엇일까? 제주시 이도2동에서 제주 여인들의 슬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오양숙씨를 찾았다. 그녀의 작업실인 2층 다락방은 온통 무엇인가를 덕지덕지 바른 구덕들이 쌓여있다. 제주 옛여인들은 구덕이 오래되어 헤어지면 버리지 않고 헌 옷이나 낡은 이불 호청 등의 천이나 오래된 종이를 발라 재사용하였다. “근검절약이 제주만의 미덕은 아니지만 척박했던 제주 땅에서 ‘조냥정신’은 유달리 삶 속 깊이 뿌리 내렸어요. 그런 지혜가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아 풀바른구덕을 만들기 시작한게 16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풀바른구덕 이야기에서 제주의 정신, 제주 여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들은 뭐든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어요. 물건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고, 그것도 버리지 않고 다시 쓸모 있는 물건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풀바른구덕을 매만지는 모습에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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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구덕에 접착력이 뛰어난 우뭇가시리 풀을 사용하여 초벌바름한다. 얇은 종이를 구덕에 바르는 손길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버리는 것에 가치를 더하다

그녀는 제주야생초로 덖은 꾸지뽕차를 내놓으며 따뜻한 대화를 이어간다. “요즘 구덕은 흔히 볼 수 없습니다. 주위 분들은 제가 만드는 걸 아니까 버려진 걸 주워다 주신적도 있어요. 헤어지고 낡으면 무심코 버리게 되는 것들이 저에겐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천도 마찬가지이다. 천연염색 하는 분의 공방에 갔는데 작업을 하고나서 쓰다 남은 자투리 천을 버리는 것을 보고 그게 너무 아까워 받아왔다고 한다. 풀바른구덕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조그맣고 하찮은 자투리 천이라도 차곡차곡 모아둔다. 모든 주부가 그렇듯 그녀 또한 생활을 하다보니 날마다 살림살이가 늘어났다. 그럴 때 어렴풋이 어머니가 사용했던 게 생각나 그 기억을 따라 만들기 시작했는데,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 구덕이 여러모로 쓸 수 있는 ‘유용지물’(有用之物)로 탈바꿈되는 것을 보고 제주 여인의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양말 같은 소소한 살림살이를 넣어둘 때도, 방 정리를 할 때도 그 쓰임이 참 유용해요. 덕분에 필요 없는 가구는 살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집 구석구석에는 풀바른구덕이 자리잡고 있다.

 

 

구덕그림자

우리네 어머니들은 종이를 귀하게 모아두었다가 풀바른구덕에 발라 사용했다. 지금은 구할 수 없는 70년대 잡지를 바른 구덕은 고상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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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곱게 바른 조각 천이 아기자기하다. ❷ 초벌 바름은 정성이 중요하다. ❸ 옷을 재단하면서 남은 여러 빛깔의 갈천 자투리를 발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했다. ❹‘선과 면의 조화’라 일컬어지는 몬드리안의 추상화와 비견할만한 고운 자태이다. ❺ 실생활에도 쓰임이 유용한 풀바른구덕은 선조의 지혜가 서려있어 더욱 아름답다.   

 

 

더욱 아름답게 리디자인하다

풀바른구덕을 만드는 과정은 정성이 가득하다. 먼저 낡은 구덕을 깨끗이 씻어 말린 후 얇은 종이로 초벌 바름을 하고 습기가 차지 않게 서늘한 바람에 완전히 말린다. 그 후 두터운 천이나 종이를 발라 마감한다. 손잡이 부분은 쉬이 닳아 잘 헤어지므로 두 번에 걸쳐서 튼튼하게 해준다. “절약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정성을 다하고 디자인을 고려하면 훌륭한 전통공예품이 될 수 있을 꺼라 생각했습니다.” 한복을 만들다 남은 천을 모아 설날 아침에 곱게 차려입은 설빔 같은 느낌으로 만들기도 하고 오래된 맞춤법과 세로줄로 써진 빛바랜 잡지를 발라 은은하면서 수수한 멋까지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지게 한다. “그저 좋아서 하기 때문에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외국에 선물을 보낼 때 쓰고싶다며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만들어 드린 적이 있는데 한국적인 멋이 있다고 참 좋아하셨어요. 제가 필요로 하거나 선물을 주기 위해서만 만듭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풀바른구덕의 소박함과 닮아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다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얻어진다.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구덕에다, 구덕에 바르는 재료도 자연소재이다. 재생지나 한지, 창호지가 쓰이고 풀을 발라도 떠버리는 코팅재는 사용 할 수 없다. 천 또한 화학섬유는 안 되고 자연소재만 사용한다. 대량생산, 대량 소비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버리는 게 익숙해지고 환경은 생각하지 않는다. 풀바른구덕을 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선인의 삶의 지혜를 마주해 보는 것 같다. 그녀는 집에서 안쓰는 바구니와 오래된 종이나 천만 있다면 한 번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재료는 새로 구입하지 않고 쓰다 남은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게 원칙이에요.” 만들다 보면 예쁘면서도 실용적인데다가 아름다운 정신까지 담고 있는 풀바른구덕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꺼라고 싱긋 웃는다. 오늘도 오양숙씨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제주여인의 슬기를 담고 있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강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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