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청춘으로 행복한 요리를 만드는 – 제주 슬로비

제주슬로비
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

슬로비 :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

 

제주슬로비2

 

제주 공항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애월읍 애월리. 빛바랜 낮은 지붕들이 방문자들을 반겨주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마을을 행복한 맛으로 도란도란 이야기가 넘치게 만드는 가게가 있다.

제주 슬로비는 애월리 복지회관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20대의 영셰프들이 손님을 맞아준다. 한면을 가득 채운 칠판에는 메뉴와 셰프들의 얼굴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고 선반에는 그릇과 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무로 된 테이블과 벽, 알록달록한 의자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풍긴다. 햇살이 쏟아지는 넓은 창밖으로 낮은 건물과 자동차 몇 대가 드문드문 서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 소박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제주 슬로비와 닮았다.

사회적 기업인 오가니제이션 요리(대표 한영미)는 청소년 요리대안학교인 영셰프 스쿨을 운영한다. 영셰프스쿨은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요리수업은 물론 인문학, 영어, 무용, 악기 등의 체험기회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흥미를 찾도록 하는 학교이다. 다양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감과 자립심을 키워나가며 이 과정을 모범적으로 수료한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오가니제이션 요리가 하는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년 레스토랑 1호점이 바로 제주 슬로비다.

제주 슬로비는 되도록 제주의 재료를 사용하는 이른바 ‘로컬 푸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또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바르게 요리하기 위해 제철재료를 쓰는 것도 아주 중요하게 여겨 계절에 맞는 새로운 메뉴들을 개발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

 

제주슬로비1제주슬로비11

❶ 오픈형 주방이라 손님이 앉은 자리에서도 바쁘게 일하는 영셰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❷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주문받은 음식을 만드는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❸ 주방 옆에 있는 공간에서는 영셰프들이 매일같이 새로운 메뉴를 연구하고 있다. ❹ 제주의 현무암을 닮은 까만 돌빵은 음식에도 곁들여 먹지만 매일 소량 따로 팔기도 한다. 이른 시간에 품절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전화로 미리 문의해볼 것! ❺ 제주 슬로비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나무로 되어있어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주 슬로비의 대표 요리는 ‘애월비빔밥’이다. 밥 위에 애월 취나물과 짭짤하게 양념한 버섯, 싱싱한 상추, 무채무침에 제주 유정란 프라이까지 얹어 쌈장에 비벼먹는다. 각각의 재료는 가까운 곳에서 구입해 싱싱함이 살아있다. 비빔밥의 모든 재료에는 양념이 되어있어 쌈장을 조금만 넣어도 간이 삼삼하게 잘 맞는다. ‘농부의 스프’ 또한 인기메뉴다. 당근과 감자 등 제주의 뿌리채소를 넣고 푹 끓여 부드럽고, 함께 제공되는 큼지막한 돌빵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제주의 현무암을 본 따 만든 이 까만 식빵은 투박해 보여도 겉은 바삭, 속은 쫄깃, 담백해서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다.

제주 슬로비의 요리사들이 요리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이 애월리의 도서관, 학교들과 연계해 진행하는 요리학교 운영이다. 작년까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했었지만 올해부터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애월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요리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고등학생들이라 한층 더 수준높은 수업이 가능하고 수업을 듣는 태도도 진지해서 영셰프들은 절로 긴장이 되면서도 그만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더욱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제주 슬로비는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 흔한 현수막 하나 걸지 않고 맛있게 먹고 돌아간 손님들이 주변 사람들과 다시 찾거나 다른 손님들도 그저 소문을 듣고 찾아와주길 기다린다. 그렇게 제주 슬로비를 찾는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빨리 성공하기 보다는 차근차근 성장하는 것. 이것이 영셰프들이 바라는 것이다.

 

애월과 어울리다.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한영미 대표가 레스토랑을 열기 위한 장소를 알아볼 때 그 마을의 분위기를 가장 먼저 따져보았다. 어린 나이에 다른 지역에서 도전을 할 영셰프들이 염려됐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어른들과 교류하면서 영셰프들은 보살핌을 받고 그 고마움을 지역사회의 보탬이 되는 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분위기를 꿈꿨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환영의 표시를 보낸 곳이 애월리였고 그렇게 애월리에 제주 슬로비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한영미대표의 바람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마을 아이들도 지금은 뛰어놀다 물을 얻어 마시러 들어오기도 하고 줄넘기를 하며 함께 놀기도 한다. 복지회관에서 마을잔치라도 열리면 오가는 어르신들이 떡을 가져다주시기도 한다. 한번은 식사를 하러 오신 할아버지께서 비빔밥에 왜 국을 주지 않냐며 역정을 내서 당황한 적도 있지만 다른 지역 출신의 영셰프들이 제주 사투리의 투박함 때문에 오해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김치를 담그거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 마을 어르신들께 먼저 맛을 물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영셰프들은 새로운 맛과 문화를 마을 어른들에게 소개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을 어른들은 울타리가 되어 영셰프들을 지켜보고 돌봐주는 것이다.

영셰프들은 애월리가 시내와 떨어져있어 야식이 먹고 싶을 때나 영화한편을 보려고 해도 불편한 점이 있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강아지와 산책하기에도, 바다와 산을 찾기에도 좋은 이 마을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제주슬로비026

 

노아름 영셰프

서울 출신의 노아름 영셰프는 올해 22살의 어린나이에 모든 것이 낯설기 만한 애월에서 제주 슬로비를 이끌어가고 있다. 2014년 5월 13일은 제주슬로비가 문을 연지 1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함께 수고해준 모든 스태프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더욱 더 열심히 하자며 다짐한 날이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건강하고 맛있는 로컬 푸드를 만드는 것, 그리고 청소년 요리교실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 개인적으로는 경험을 많이 쌓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수줍게 웃는 줄만 알았는데 계획을 말할 때에는 제주말로 ‘요망진’ 모습이 엿보였다. 그 요망진 모습에 앞으로 제주 슬로비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를 해본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촬영협조 / 제주 슬로비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원로 4 애월리사무소 1층  전화: 064-799-5535

영업시간:오전 11:00시~오후 21시 까지 Break Time  15:00 ~ 17:00  정기휴일:매주 화요일

대표메뉴:제주돌빵, 애월비빔밥, 농부의 스프 등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