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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보유자 김윤수 선생이 전하는 칠머리당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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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머리당영등굿은 굿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에 당연히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각 제차 중 가장 호응이 높은 순서는 물론 예능보유자인 김윤수 심방이 출연하는 대목이다. 송별제의 초감제부터 본향제까지는 예능보유자가 출연하게 된다. 

 

 

예능보유자 김윤수 선생이 전하는 칠머리당영등굿

 

옛 제주인의 삶에서 굿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신들의 숫자가 1만 8,000이라는 제주 섬, 불교와 기독교인의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적은 것으로 알려진 제주 섬에서 특히 제주의 칠머리당영등굿은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이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는데…. 그 뒤에는 국내에 200명도 안 되는 인간문화재 중 한 명, 즉 예능보유자로서 칠머리당영등굿을 보존해온 김윤수 선생이 있었다. 그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칠머리당영등굿에 대한 이해 돕기

영등바람을 맞이하여 마을마다 신당에서 벌이는 굿이다.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1일)에 시작하여 2월 보름에 끝난다. 그 중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하는 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7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제주도의 보물이다.

영등신(영등할망)이 바람을 몰고 온다고?

제주도민들은 해마다 정월 그믐 때부터 음력 2월 사이에 온갖 바람이 서해로부터 불어오면 “강남 천제국 외눈박이섬에서 바람의 신 영등할망(영등할머니)이 오시는 것”이라며 심방을 통하여 들에서 굿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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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방선 / 칠머리당영등굿의 ‘배방선’이라는 제차에서 사용하는 배. 굿 마지막에 제물을 실어서 영등을 바다에 내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요령 / 굿할 때 쓰는 무구(기물) 중의 하나. 거의 모든 제차마다 심방이 흔들면서 사용한다. 요령(무령)의 역사는 청동기시대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날씨에 따라 영등신의 모습이 다르다

제주의 영등굿은 육지부의 영등굿과 다른 면이 있다. “음력 2월 1일, 영등신이 들어올 때 날씨가 추우면 옷을 따뜻하게 입고 들어왔다고 하고, 비가 오면 우장을 쓰고 들어왔다고 하고, 날씨가 좋으면 딸을 데리고 왔다고 하고, 날씨가 나쁘면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김윤수 심방은 영등굿 기간에 바닷가에 사는 고둥류의 빈 껍질이 많은 이유도 무속신앙의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영등신이 다 까먹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굿, 규모면에서 압도적

제주에서의 영등굿은 크게는 환영제와 송별제로 나뉜다. 그 중 환영제는 음력 2월 1일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시 부두 수협 공판장 등에서 오전 9시부터 풍어제를 겸하여 3시간 가량 열린다. 송별제는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있는 칠머리당에서 간단히 말해 초감제▶본향듦▶요왕맞이▶씨드림·씨점▶영감놀이▶배방선의 순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진행된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 지역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영등굿으로, 한 제차에 많게는 25가지의 작은 제차까지도 들어있다. 참여하는 심방의 수도 많아서, 동시에 15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 이에 비례하여 참여자·관람객도 많다. 해마다 영등굿 송별제를 할 때면 건입동 칠머리당에 많을 때는 2천명까지도 모여들었었고, 보존회 측에서  준비한 1천명 분의 국수가 모자랄 때도 있었다고 하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규모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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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머리당 영등굿에 사용되는 도구들/ 대영, 북, 장구, 설쇠 네 가지가 있다. 제주에서는 이 악기들을 연물(演物)이라고 하며, 이 악기들을 칠 때 ‘연물친다.’라고 한다. 설쇠는 쇠로 만든 악기로 밥그릇 모양으로 생긴 타악기를 엎어 놓고 채로 치는 악기이다. 대영은 징, 북은 ‘제주연물북’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굿에서 쓰는 장구는 일반 장구보다 훨씬 작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굿

좀녀굿(해녀굿)까지 엮어서 하는 것은 국내에서 제주도의 영등굿이 유일하다. 칠머리당영등굿에서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이 굿이 칠머리당이라는 이 마을의 본향당에서 행해져온 것이라는 점이다. 마을 차원의 지지를 얻어 소제차까지 하나하나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전수되는 것이 드문 현상이다 보니 굿 종목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주민들과의 연계는 무시할 수 없다. “굿을 할 때마다 마을 분들, 굿에 참여하는 해녀들, 어선의 선주 등이 지속적으로 유대하면서 지금까지도 참여자가 많은 굿으로서 활성화되고 있을 정도이니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하는 것이지요.”

 

“굿은 볼거리가 아니라 신앙이다”

제주 굿은 사설이 긴 편이다. 그만큼 굿이 사람들의 생활에 녹아들어있다는 것일까? 김윤수 심방은 손사래를 치며 “생활 정도가 아닙니다. 굿은 제주 사람들의 신앙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제주의 마을마다 한 명 이상씩은 있었던 심방들은 인간과 하늘을 이어주는 제사장의 대우를 받아왔다. 현대의 신부나 목사 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절이나 성당을 찾으며 자신만의 신앙을 하듯이 굿을 하는 심방에게나 굿을 의뢰하고 굿에 참여하는 일반인에게나 굿은 신앙의 차원인 것이다. 김윤수 심방도 매번 굿을 할 때마다 신앙하는 자세로 신들에게 사람들의 무사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전수자의 삶은 보람되지만 젊은 후계자 없어 아쉽다

16살때부터 약 50년 간 심방으로 일해온 김윤수 심방(64). 어떻게 출생지도 아닌 건입동 지역에서 칠머리당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칠머리당영등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980년, 故 안사인 선생이 저에게 칠머리당영등굿을 함께 보존해나가자고 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사인 선생의 뒤를 이어 칠머리당영등굿의 2번째 예능 보유자가 된 지금은 젊은 전수자를 확보하는 것이 과제처럼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20대부터 들어와서 배워야 그들이 40대가 됐을 때 실력 있는 심방이라는 커리어를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춤을 잘한다거나 학위를 취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복식·음식 뿐만 아니라 춤·제단·제례·연극적인 요소 등의 모든 면에서 어느 수준 이상에 도달해야 해요. 그래서 한 사람이 전수받는데 보통 10~15년가량 걸립니다.”

 

지금은 제주의 옛 어르신들의 기억에서만 뚜렷한 굿 문화. 그 중에서도 칠머리당이라는 곳에서 행해지는 굿 문화 하나를 세계적인 재산으로 지켜온 김윤수 심방은 담장조차 없는 칠머리당을 지키며 오늘도 굿을 의뢰해오는 이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그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굿을 전수하면서 바쁜 하루를 보낸다.  “가장 급한 것은 당을 보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주만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지키는데 힘쓰는 무속신앙 분야의 마에스트로다운 손길이 있기에 제주 섬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촬영장소 /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TEL :  064-753-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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