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수수한 그녀의 은근한 매력, 원물오름

원물오름1

 

수수한 그녀의 은근한 매력

“원물오름”

 

제주도의 오름은 화산활동 즉 불의 신이 빚어놓은 자연작품들이다. 원물오름은 수수한 생김새와 달리 은근한 매력이 있다. 오름 능선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풍경은 제주의 강한 바람과 함께 강한 인상을 남긴다.

원물오름2

❶ 원물오름 입구는 마소의 방목지와 붙어있다. 초입의 길은 등산로가 깊이 패어있는데 소들이 숱하게 지나다닌 흔적이다. ❷ 오름 입구 우측에 보이는 ‘원물’이라 불리는 샘이다. 예전에 이 부근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이 이곳에 습지가 형성돼 있음을 보고 파 보았더니 맑은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가을이 익어간다. 제주의 가을하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무엇일까?

제주에 처음 온 이라면 한라산, 관광지, 바다 등을 꼽겠지만 제주를 꽤 안다하는 여행고수라면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자연인 ‘오름’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으리라. 100만년 제주 생성 이후 수차례의 화산활동이 있었다. 제주도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라산이 불쑥 솟구쳐 오르고 용암이 지하세계로 흘러가다 약한 지반 부분에서 팥죽이 끓듯 부글부글 끓어올라 크고 작은 수 백 개의 오름을 만들었다. 단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분출 이후 또 다른 화산활동과 침식, 퇴적 등 다양한 변화가 더해져 오름 하나하나는 저마다 독특한 자연미를 지녀 무한개성의 제주의 특별함으로 자리 잡았다. 여행자의 눈에 기생화산구인 ‘오름’은 화산섬 제주의 무수히 많은 나지막한 산들로 보인다. 대지 위에 불룩불룩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특이하다 여기며 그 수가 360여개에 이른다고 하면 놀라움을 나타낸다. 하나의 섬에 이렇게 많은 수의 오름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희귀한 군락과 자연미를 지니는 것과 함께 제주사람들에게 오름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따뜻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친근하고 소중한 존재다. 오름 아래에서 밭을 갈고, 오름의 초지에 마소를 방목한다. 죽은 뒤에는 산담에 둘러싸여 오름 자락에 영혼의 휴식처를 마련한다. 여행자는 오름 트레킹을 통해 제주자연의 독특한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주인의 삶의 향기와 영혼과 공존하는 제주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제주 오름 트레킹의 특별함이라고 하면 반전의 매력을 꼽을 수 있다. 오름 아래서 트레킹을 시작할 때는 보통 가족 또는 벗과 함께 운동 삼아 오른다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타박타박 10~20여분 정도만 오르면 어느새 정상 굼부리에 다다른다. 정상에 서는 순간 눈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풍광에 매료된다. 제주의 매혹적일 만큼 아름다운 경치가 가슴으로 밀려든다. 폐부 깊숙이 스며든 청량한 공기를 따라 시원하게 뚫리는 가슴을 느끼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자연의 감동, 그것이 단 10여분으로 만날 수 있다면 마다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오름을 올랐던 이는 또 다른 오름 트레킹을 계획하게 된다.

 

 원물오름3

❸ 멀리 한라산 정상의 분화구벽까지 선명하다. 산담과 어우러진 오름과 한라산의 제주의 풍경을 드러낸다. ❹ 남쪽 바닷가에는 백록담 분화구가 푹 패어져 떨어져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산방산이 웅장하다. ❺ 한라산과 산방산이 서로를 그리워하여 세찬 바람을 불어대는지 바람이 불라치면 모질고 강하기가 사정없다. 가을하늘은 이를 아는지 청명하기만 하다.

 

 

올가을에 올라볼 오름은 제주 서부권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원물오름이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한적한 오름으로 일몰의 빼어남이 특별한 추억을 안기는 곳이다. 원물오름은 비고 98m의 말굽형 화구이며 중앙 굼부리의 경사는 완만하다. 나지막하고 대부분 초지로 되어있어 만만하게 여기고 올라도 무방하다. 평화로(1135번)와 산록도로(1115번)가 만나는 광평교차로에서 동광초소 쪽 1.7km 지점에 있는 충혼묘지를 이정표 삼아 찾는 것이 쉽다. 충혼묘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면으로 보이는 오름트레킹을 시작해본다. 우측에 자그마한 저수지가 보인다. ‘원물’이라 불리는 샘이다. 예전에 이 부근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이 이곳에 습지가 형성돼 있음을 보고 파 보았더니 맑은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원물이라 불린 이유는 조선시대 대정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다하여 ‘원물’이라 했다고 한다. 오름의 이름이 ‘원물오름’, 또 ‘원수악’이라고 불리는 것은 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오름 이름에는 보통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이 오름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기슭에 샘물이 있고 元(원)나라가 목장을 설치하여 그 물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원물’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조선시대에 이 오름에서 조금 내려간 동광리 입구에 원(阮 : 출장하는 관원을 위해 각 소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던 국영의 숙식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름의 이름 유래를 앎으로써 이곳에 원(元)의 목장이 있었고, 조선시대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인 이곳에 원(阮)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물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고 수면 위에는 수련 잎이 떠있다. 물은 마소의 방목지가 바로 곁에 있어서인지 그리 맑지는 않지만 나름 운치가 있다. 원물을 지나면 흙이 패인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소들이 진을 치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흙길이 눈에 보이도록 깊이 패어있다. 사람보다 소들이 숱하게 등산로를 이용하였나보다. 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초입만 지나면 초지로 된 오름 자락이 나타나 걷기에 수월해진다. 이른 봄 할미꽃이 피어나는 양지바른 언덕이 떠오른다. 오름이 가을 분위기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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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풀들 사이에 자줏빛 꽃향유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있다. 가을 꽃들은 특히 색깔이 화려하다. ❷ 원물오름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하다. 일몰의 빼어남이 특별한 추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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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한라산에 붉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저물어가는 태양빛 아래의 한라산이 더욱 가깝게 오묘하게 다가온다. ❹ 한가로이 오름자락에서 노니는 소떼들이 오후 빛에 더욱 여유로움과 목가적 분위기를 더한다. ❺ 해가 바다로 입수를 시작하였다. 제주의 자연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골든타임, 무념무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풀들 사이에 자줏빛 꽃향유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있다.

여인의 곡선과도 같은 부드러움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자그마한 언덕들이 정상을 향해 뻗어 올라 남북의 두등성이를 이루고 이는 서쪽으로 말굽형의 펑퍼짐한 굼부리를 형성하고 있다. 등성이는 민틋하고 남북의 두 봉우리 사이에는 잔디가 곱다. 남서쪽의 봉우리 부근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고고리암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그 모양새가 고고리(꼭지의 제주어)와 닮았다 하는데 그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다. 북쪽 봉우리에는 넓은 바위들이 연이어 박혀 있고 그 밑에는 제법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꽤 구름이 많은 날이어서 바다로 뚝 떨어지는 해보다는 해질녘의 노을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올랐다. 오늘, 오름 트레킹의 목적은 일몰이다. 점심 무렵,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하였고 충분히 즐겼다 싶은데 해가 질 때까지는 아직 1시간여가 남았다. 유난히 바람이 센 날이다. 이곳 원물오름이 바람이 드세기 짝이 없는 오름이리란 생각이 든다. 정상 부근에 핀 야생화들이 유난히 키가 작은 이유가 바로 이 바람 탓이지 싶다. 가을바람의 매서움이 여민 옷 속으로 파고들고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바람을 피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몇 개의 산담이 보이고 그 아래 참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 곳만이 몰아치는 바람과 다른 세상인양 바람이 잦아든다. 남서쪽의 삼나무와 소나무가 바람을 막아주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을 일몰산행으로 원물오름을 오를 때는 따뜻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서서히 해가 바다로 입수를 시작했다. 점차 물들어가는 골든타임, 한가로이 노니는 소떼들이 황금빛 석양에 물들어 목가적 분위기를 더한다. 태양이 있는 그 아래 산방산이 있고 너머에 가파도, 마라도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쪽으로는 당오름, 정물오름, 금오름이 오름 삼중주를 연출한다. 그리 큰 기대는 없었건만 너무도 황홀하다.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거친 바람에 오들오들 떨던 몸과 마음이 환상적인 해넘이로 잦아든다. 원물오름은 가볍게 올라 일몰의 아름다움과 목가적인 정취에 한껏 취할 수 있는 가을 오름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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