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궷물오름의 반전매력에 빠지다!

궷물오름

궷물에서 즐거워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지막한 오름을 오른다. 오름은 작지만 의외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생태, 역사, 생활이 어우러진 궷물오름의 진가를 하나씩 만나면서 살방살방 걷는 길이 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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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제주에 피는 노루귀들은 대부분 새끼노루귀다. 노루귀에 비해 작으며 꽃 이름은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졌다. ❷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흰괭이눈이다. 꽃과 잎에 흰 털이 나있고 열매집이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궷물오름은 비고 57m, 정상까지 20분이면 도착하는 낮은 오름이다. 뭐 볼만할 게 있을까? 싶겠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이 꽤 다채롭다. 무엇보다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용천수가 매력적이다. 사람들에게는 식수원이었고 마소들에게는 묵을 축일 수 있는 물동이 역할을 하였던 궷물이 오름 안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에서 궷물을 중심으로 생태학교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오름 가득 울려 퍼진다. 테우리(말과 소를 기르는 사람, 목동을 일컬음)에게 특별한 오름이기도 하다. 백중제를 지내는 제단, 테우리 우막 등 그들과 동고동락해온 발자취가 생생하다.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데 껍질을 벗기고 나니 그 안에 씨알 굵은 알맹이가 가득하여 기분이 흐뭇해지는 오름, 봄의 궷물오름이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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❸ 산중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인 궷물을 가둬놓은 시설이 보인다. 물이 풍부한 때문인지 이른 봄인데도 이끼가 새파랗다. ❹ 테우리들이 음력 7월 15일에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는 백중제를 지내는 제단이다.

 

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비교적 쉽다. 1100도로를 가다 어승생 삼거리에서 1117번 산록도로로 진입하여 7km 정도 달리면 좌측으로 경찰특공대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에 제법 큰 주차장이 나타난다. 궷물오름이나 족은노꼬메를 다녀올 수 있는 진입로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어 평일인데도 탐방객 몇 팀이 보인다. 대부분 족은노꼬메 쪽으로 가는데 우리는 호젓한 궷물오름으로 향한다.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입구 언덕에 핀 새끼노루귀들이다. 청초한 흰색의 꽃잎 사이로 꽃등에의 날갯짓이 분주하다. 봄꽃 마중에 미소를 짓다가 궷물에 다다른다. ‘궤’는 위쪽이 큰 바위나 절벽으로 가려져 있고 땅속으로 깊숙하게 패여 들어간 굴을 뜻한다. 궤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온평리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의 이름도 이곳과 같은 궷물이다. 바닷가에서 솟든, 오름 중턱에서 솟아나든 제주에서 물은 생명수이다. 생명수가 풍부한 곳을 기점으로 마을이 생겨나고 생활이 이루어졌다. 생명수를 품고 있는 이 오름이 주변 마을 사람들이나 테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오름 정상에서 백중제를 행하였다. 백중제는 음력 7월 15일을 기해 테우리들의 신인 백중이를 모시고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는 제이다. 현재에는 궷물입구 좌측 언덕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제단 아래쪽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꽤 큰 규모로 가두어둔 궷물이 보인다. 현재에도 땅속 바위굴에서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용천수가 쉼 없이 솟아나고 있다. 물속에는 올챙이들이 곧 부화하려고 꼬물거리고 있다. 습지에 사는 식물과 동물을 관찰하고 학습하는 생태학교프로그램이 궷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이곳이 더욱 활기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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❺ 테우리막사는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질 경우 피난처로 이용한 테우리들의 쉼터이다. ❻ 궷물오름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숲길 사이로 큰노꼬메가 장중하게 다가온다. ❼ 오름 정상에 홀로 선 나무 한그루와 제주 화산석 바위가 서로를 의지하는 듯 서있다. ❽ 오름 하산길에 삼나무와 해송 숲이 간간히 나타나므로 가볍게 산림욕하기 좋다.

 

오름은 제단 맞은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가볍게 산책하듯 즐기면 된다. 오름 능선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유유자적하다. 중턱에 테우리 우막이 보인다. 테우리들의 쉼터로 도롱담을 쌓아 올린 후 지붕용 나뭇가지를 걸치고 그 위에 새(띠풀)나 어욱(억새)으로 덮어 만들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질 경우 피난처로 이용하였고 백중제날 비가 오면 이 우막집을 이용했다고 한다. 잠시 멈추어 먼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지는 서쪽을 향해 열린 전망을 감상한다. 우막을 나와 천천히 걸었더니 어느덧 정상이다. 정상은 바람이 거세다. 드센 바람과 함께 자란 나무 한그루가 제주 바람의 무늬를 온몸에 각인시킨 채 홀로 서있다. 그 옆에는 둥글넓적한 제주 화산석 바위가 벗하고 있어 그나마 외롭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의 오름길이 너무나 편안하였나보다. 선방에 앉아 봄날의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여 가물가물 걷다가 죽비로 한대 맞은 듯 정신이 소스라치게 일어난다. 그만큼 바람이 거칠고 세다. 오름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산체이다. 남쪽으로 큰노꼬메와 족은노꼬메가 다정하게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해송과 삼나무가 부분부분 나타난다. 가벼운 삼림욕을 즐긴다. 오름의 남쪽 일대는 조선 초기 조성한 5소장 상잣성이 일부 남아있다. 오름 탐방로 주변으로 보이는 세월의 때가 묻은 돌담이 그 흔적이다. 남쪽으로 연두빛 새순이 올라오고 있는 목장에 노루 예닐곱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살금살금 다가가도 고개만 들고 빤히 바라보다가 점점 더 가까이 가니 갑자기 초원을 가로지르며 내 달린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저 노루들처럼 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릴지도 모른다. 가볍게 올라 아기자기하게 즐길 수 있는 궷물오름 탐방으로 잠시나마 봄을 만졌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찾아가는 방법 / 평화로(1135번)와 산록도로(1117번)가 만나는 어음1리 교차로에서 1100도로(1139번)쪽으로 3.1km 지점 또는 1100도로변의 어승생 삼거리에서는 7.09km 지점 한라산방향에 위치함. 소요시간 : 정상까지 2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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