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어미 품에 안겨 잠든 아기의 모습 모지오름

모지오름 메인

 

 

어미 품에 안겨 잠든 아기의 모습

모지오름

 

 

누군가 그리 말하더라. “젖 빨던 기억 어른 되도 잊히지 않는다”고. 모지오름은 어미 품에 안긴 아기의 형태를 닮았다. 충분히 젖을 먹고 나서 둥그렇게 감싸 안은 어머니 품에서 곤히 잠든 모습이다. 오르내리는 능선이 그리 가파르지 않고 너른 품으로 벌려진 말굽형 화구호에 둥근 알오름이 옴팍 들어가 있다. 능선에서 분화구 쪽으로 내려오면 안쪽은 초지로 되어 있어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편안하다. 모지오름은 차가운 세상살이를 막아주는 어머니 품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오름이다.

 

 

모지오름4

오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리송! 그래도 걷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날이다.

모지오름5

오름 사면은 그리 경사도가 크지 않다. 초입에는 삼나무가 주로 조림되어 나름 운치가 있다.

모지오름6

삼나무 숲을 지나 굼부리에 도착하면 미처 떠나지 못한 가을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바람에 사뿐하게 흔들어대는 철 지난 억새가 가을로 데려간다.

 

 

 

모지오름1

➊ 오름의 전체모습은 입구에서 조망할 수 있다.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아 부드러운 능선을 비추고 있다. ➋ 햇살이 드나들고 의외로 따뜻한 날씨다. 몸과 마음이 가벼운 오름길이다. ➌ 초록의 고사리와 어우러진 특이하게 생긴 버섯이 눈길을 끈다. ➌ 등산로는 인위적인 손길로 정비되어 있지는 않다. 비에, 눈에 사람의 발자국에 조금씩 길이 패어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은 모습이라 하여 모지오름이라 불리었다. 한자로는 母子岳(모자악), 母地岳(모지악) 등으로 표기한다. 모지오름을 알자면 주변의 오름들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오름 주변에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제주사람들이 그들의 삶과 문화가 녹아있는 오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제주인들이 만든 오름 가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그들의 생활과 오름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모지오름 근처에는 따라비, 장자오름, 새끼오름이 있다. 가족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온 용눈이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손지오름도 이들 가족의 일원이다. 따라비는 땅하래비에서 변한 말로 땅할아버지를 의미하는 제주어다. 제주에 돌하르방은 있어도 돌할망은 없다. 할아버지가 집안의 가장이며 그 너머에 크기가 따라비 못지않게 듬직한 며느리, 모지오름이 있다. 따라비는 높이 107m이고 모지오름은 86m이다. 밭일에, 물질하고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했던 제주 여인의 집안에서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에 비해 장자오름은 비고가 31m로 형체가 미미하다. 집에서 하릴없이 지내는 아비일까? 주눅 들어 보이는 모습이 안쓰럽다. 어미에게서 독립해 나온 새끼오름과 멀리 일하러 나간 듯한 손지오름은 크기가 엇비슷하다. 오순도순 모여 살면서 서로가 독립된 생활을 해나갔던 제주인의 생활 모습이 이들 오름 가족에게서 엿보인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며느리이자 어머니인 모지오름을 오른다. 그다지 많이 가는 오름이 아닌 탓에 그 입구 찾기에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도를 출력해 왔겠다 자신만만하였는데 몇 번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꽤 소비했다. 우리와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오름 입구를 상세히 설명한다.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이용해 성읍리 방향으로 가다 성읍2리 교차로 50m 전 쯤 우측의 시멘트도로를 따라가다 아주 작은 천을 지나서 150m 정도 더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이때 좌측 길로 들어서 1km 가면 좌측 언덕에 초소처럼 보이는 임시 건물이 있고 우측에 오름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모지오름2

억새풀이 굼부리 능선을 따라 자라고 있고 양옆에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혼재한다.

 

 

삼나무 숲을 통과하여 오르는 길은 눈이라도 올라치면 나름의 정취가 깊을 것 같다. 경사도가 그리 급한 편은 아닌데 길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 군데군데 흙이 패어있어 아주 수월하다고도 할 수 없는 오름 길이다. 오름은 분출지 지표면의 단단하고 무른 특성에 따라 형태가 천태만상이다. 수차례에 걸쳐 터져 나온 돌과 암석 덩어리들이 원래의 오름 위에 쌓이면서 오름 전체가 복잡한 모양을 띠기도 한다. 모지오름의 능선은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태를 띠면서 완만하게 구부러져 있고 어미 품의 아기처럼 분화구 안에는 둥그런 형태의 알오름이 자리하고 있다. 삼나무 숲이 끝나니 억새 물결이다. 가을 내내 황금빛으로 능선을 찬란하게 비추었을 억새는 이제 허옇게 센 머리를 하고 바람에 부딪히며 헐떡이는 숨을 쉰다. 억새가 너른 띠처럼 능선을 타고 이어져 가을날의 환희를 상상하며 굼부리를 따라 걷는다. 휘어진 능선 중간쯤 왔을까, 분화구 안쪽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모지오름이 아이를 잉태하듯 분화구 안에 작은 오름(비고 13m)을 낳아 안고 있는 듯이 보이며 주변의 편평한 땅은 겨울인데도 파릇함이 감돈다.

 

 

모지오름3

➊ 바람이 연주하는 오름 풍경이다. 저 멀리 오름 능선과 제주 땅이 평화롭다. ➋ 남오미자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남오미자는 덩굴성으로 그 열매는 오미자의 대용으로 쓰인다. ➌ 분화구 안쪽은 겨울인데도 파릇함이 감돌아 싱그럽다. 너른 들판을 걷는 발걸음이 편안하다. ➍ 고사목이 억새밭 사이에 서있다. 푸르른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가고픈 소망을 읽는다.

 

 

굼부리 능선에서 바다 방향으로 보이는 우뚝 솟아있는 오름은 영주산이다. 조선시대 정의현의 주산 격이다. 신성한 산으로 인식되면서 ‘영주산’이라 불리었다 하며 그 이름에 걸맞게 듬직한 형태로 자리하여 성읍마을을 돌보고 있다. 바람의 언어로 노래하는 억새군락이 끝나면 다시 삼나무 숲이다. 편백나무도 꽤 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분화구 방향으로 잡았다. 굼부리에서 보았던 알오름과 초지의 모습을 가까이 보고픈 마음에서다.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흐릿한 사람의 흔적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걷기를 방해하는 풀이 없어 쉽게 내려갈 수 있다. 침엽수림 아래는 풀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데 뿌리와 잎줄기에서 다른 식물을 못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비하는 때문이다. 평지에 다다르니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너른 벌판이다. 들녘을 따라 걸으며 따뜻한 어머니 품속에서 노니는 듯 편안함을 느낀다. 오름을 왼쪽에 두고 걸어 나오는 길은 꽤 길고 발아래 푹신한 흙의 감촉은 능선의 억새와 함께 계절을 가을로 만들고 있다. 빨간 열매가 눈에 들어온다. 댕댕이덩굴, 찔레나무 열매가 잎을 떨어뜨린 앙상한 가지에 빨간 꽃처럼 점점이 박혀있고 동백의 탐스러운 꽃송이도 함께 반겨준다. 아치형으로 휘어진 들판의 끝에서 약간의 덤불을 지나니 시멘트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처음 우리가 출발했던 바로 그 시작점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름 보물을 찾은 듯하다. 모지오름은 따라비의 그늘 아래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오름이었다. 가을에 몇 번이고 따라비를 찾으면서 가까이 있는 모지오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형태에서 아주 빼어나게 아름답다 할 수 없으나 활처럼 휘어진 능선의 억새군락과 분화구 안쪽의 너른 들판, 동백나무 간간히 보이는 알오름은 넉넉함과 편안함으로 오르미들을 맞아 준다. 겨울이 비껴가는 듯한 오름의 따사로움이 부드러운 여운을 남기는 곳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사진 / 오진권

모지오름 찾아가는 길 /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타고 가다 성읍2리 교차로 50m 전 시멘트 도로 700m 직진 후 좌측길 1km 지점 우측에 오름 입구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