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어머니 품 같은 형세, 영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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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 벌려 반겨주는 어머니 품 같은 형세, 영주산

그 품에 안기는 영주산 안자락은 봄볕 따스한 날의 안온함이요. 바깥 자락은 바람 잘 날 없는, 채 떠나지 못한 겨울의 뒷자락이다.

 

영주산은 멀리서 보면 가부좌한 어르신의 중후함으로 다가오고, 오름 입구에서 보면 어머니가 두 팔 벌려 반겨 주는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 형세가 듬직하여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눈길을 사로잡는 영산(靈山)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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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 / 산담(무덤 주위에 둘러쳐진 돌담)안에 세워진 1m이하의 작은 석상으로 해학적이고 익살스런 얼굴표정과 술병, 부채, 화살 등 상징물을 들고 있는 모습 등 제주인의 삶과 숨결이 깃든 제주의 문화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무속신앙, 불교 및 유교적인 요소들이 융합된 상징물이다.

 

 

 

영주산 남쪽에 위치한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시대의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1목 2현의 삼읍체제 중 정의현의 5백여 년간 중심지였다. 제주도 옛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민속마을 북쪽의 영주산은 이 마을의 지킴이라 할 수 있다.

영주산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온다. 그 내용을 보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심 지극한 아들이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물을 긷고 가는 이 마을 부잣집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는 어머니 봉양은 제쳐두고 그 처녀의 뒤만 쫓아다니느라 어머니를 전혀 돌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추운 겨울날 홀로 세상을 뜨게 되었단다. 이로 인해 마을에서 손가락질 받게 되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녀생각에만 몰두하였다. 어느날 처녀 앞을 막어서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것을 처녀의 아버지가 보고는 집에서 딸을 내쫓기에 이르렀다. 그 처녀는 할 수 없이 총각과 살림을 차리게 되고,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때문에 마을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에 몰래 떠날 생각으로 동구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결국 처녀는 영주산이 되었고 총각은 무선돌 바위로 변하였다. 그 후로 영주산은 마을 처녀, 총각을 보살피는 산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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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 초입에 쌓아 올려진 돌탑, 오가는 오르미들이 하나 둘 쌓은것이 돌탑이 된 듯하다.

 

 

영주산 아랫자락에서 영주산을 올려다보면 오르기에 적당해 보이지만 생각처럼 만만하지가 않다. 영주산 처녀에게 다가오는 불효막심한 총각을 나무라듯 바람이 후려쳐대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토록 보름코지(바람이 심하게 부는 곶)가 드물지 싶다. 바람이 센 날이면 몸뚱이를 날려버릴 듯이 세차가 불어대는 바람에 산행이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다. 특이한 것은 능선을 오르는 내내, 바깥 사면에서 몰아쳐대는 바람에 맞서느라 정신을 못 차리다가도 분화구 능선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람이 잦아들어 어머니의 자애로운 품에 안기듯 포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바람의 방향에 따른 것이지만 어찌 그리 바람이 달라질 수 있나 신기할 정도다. 신산으로 우러러온 영주산의 신령스러움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아침 안개가 끼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이야기기 전해져, 날이 오래도록 가물 때에는 아침녘 영주산을 올려다보며 비를 기다렸으며, 비와 관련하여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이렇듯 영주산은 마을의 수호 산이자 기우제를 지내는 곳, 봄꽃놀이터로 사랑받는 산으로 성읍마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크게 자리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만하다.

오름 입구에서 동쪽으로 올라  오름 서쪽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며 서쪽은 울창하진 않지만 숲이 우거져 있고 산등성이에는 키작은 철쭉나무가 꽤 많다. 산 중턱까지는 완만하지만 중턱 이후부터는 경사도가 높아진다. 최근 등산로를 목재계단으로 정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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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은 한쪽으로 용암이 흘러내려 터진 말굽형 분화구를 지니고 있다. 정상에서 웅장한 분화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오름은 전체적으로 나지막한 풀밭이다. 바람이 세차서 풀들이 크게 자라지 못한 탓도 있지만 소와 말을 방목하여 키우는 오름이라서 큰 나무들이 없는 이유도 있다.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여 일출 맞이하기에도 그럴싸한 오름이며, 한라산을 위시한 사방으로 확 트인 경치가 오름 전망대라고 할만하다. 아래쪽에 정의현감을 지냈던 강만식의 묘가 있으며 산담 안에는 특이하게 동자석이 양옆에 두개씩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줄 동자가 넷이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백성들이 일부러 두개씩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봄철 파릇파릇 올라온 잔디와 나지막한 야생화가 봄을 얘기해주는 오름, 바람과 함께 올라 호연지기를 품을 만한 오름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찾아가는 방법 : 성읍민속마을에서 성읍-수산간 도로(1119번도로)로 수산방면으로 조금 가다 알프스승마장 옆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가면 성읍공동묘지에 이르는 시멘트도로가 있다. 이 도로로 들어가 오름의 동쪽 사면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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