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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예술을 만나다. 작가의 산책길

작가의산책길(2013)1 2

이중섭이 가족과 단란했던 때를 그리워하며 게와 아이들을 드로잉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정미진 작가의 작품 <게와 아이들-그리다>가 작가의 산책길 중간 지점인 자구리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산책길

길, 예술을 만나다

 

예술의 이상향을 꿈꾸는 길이 있다. 서귀포에 머물며 영원한 명작을 남기는 예술가들의 흔적이 스며있고, 지금을 살아가는 작가들이 솜씨를 부려 산책길을 낸다. 찬찬히 걸으며 작품을 만나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하고 노니는 곳, 작가의 산책길에서 예술의 유토피아가 실현된다.

 

 

손그림자작가의산책길은 숨은 보물찾기와 같다.

이중섭을 비롯해 서예계의 거목 현중화, 폭풍의 화가 변시지 등 서귀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펼쳤던 예술가를 마주 할 수 있고, 화려한 도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서귀포 마을은 작가 40팀이 참여하여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경험 할 수 있는 작품이 노다지처럼 지천에 숨겨져 있다. 문화를 이야기하며 노는 곳이라는 ‘유토(遊土)’와 너와 내가 만난다는 ‘피아(披我)’를 합친 유토피아로는 기당미술관과 칠십리공원, 자구리해안과 정방폭포에 이르는 4.9km 거리가 지붕 없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탄생하여 한바퀴 둘러보는 도보 탐방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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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남쪽 나라로 떠나는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은 이중섭문화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❷ 人길에서는 초록의 숲 아래로 서귀포구가 훤히 내다보인다. ❸ 지도를 보며 곳곳에 자리잡은 작품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보는 즐거움을 준다. ❹ 작가의 산책길 초입에 자리한 샛기정 공원에서 푸른 숲과 어우러진 예술의 정취를 만난다. ❺ 둥그런 울타리에 벤치가 있는 <샛기정원>은 정원처럼 아늑하다. ➏ 칠십리시공원의 유토피아 갤러리에는 거친 제주 땅을 일구어낸 생명의 씨앗을 피워낸 제주사람들의 숨결이 전해진다. ➐ 이중섭문화거리의 커뮤니티센터에는 숲, 길, 바다 그리고 길이라는 주제로 묶여진 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계곡과 숲이 주는 생동감, 人숲

작가의 산책길은 샛기정 공원에서 시작되어 천지연 폭포를 지나 칠십리공원으로 이어지는 1구역 ‘人숲’으로 시작된다. 시작은 얼기설기 얹어 놓은 <제주 돌담>이 먼저 맞는다. 천지연에서 내려오는 민물을 물허벅을 지고 올랐다던 샛기정 길의 고단함을 구름처럼 둥둥 실려 보내는 <샛기정, 구름으로 살다>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폭포와 어우러진 <물의 축제>를 지나, 귤의 단면과 현무암이 만나 의자로 표현된 <샛기정원>에서 잠시 여유를 즐겨본다. 나무의 겉이 말라 심재만 남아있는 고사목으로 만든 말 사이로 제주 야생화가 싹을 틔우며 작품 이름처럼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지연 다리를 지나면 보이는 ‘기당미술관’에서는 지팡이를 짚은 채 거친 바람을 맞으며 붓 하나로 제주를 그린 변시지 작품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건너에 있는 칠십리 시공원은 한라산의 장관을 가슴 가득 품에 안아 볼 수 있다. 발아래 천지연 폭포가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초연하게 떨어진다. 공원에는 유토피아 갤러리가 자리한다. 높은 천장에는 씨앗을 의미하는 돌들이 매달려있고 벽에는 제주 밭을 일구었던 농기구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방 안에 들어가면 해녀가 바다로 뛰어 들 때 메고 들었던 태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파도소리에 섞인 숨비소리가 애달프게 들려온다. 척박한 제주 땅에 생명의 씨앗을 심었던 제주사람들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것이리라. 연못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게 되는 <경계선을 넘어서>는 그 끝에 거울에 비친 나를 만나고, 자동문을 넘어 또 다른 탐라의 자연과 돌담이 있는 쉼터로 이끈다.

 

제주사람들의 삶의 터전, 人집

서귀포의 옛 시원이었던 서귀포구부터 천지연를 가로지르는 ‘人집’은 말 그대로 서귀포 사람들의 삶의 터전 안으로 우리를 이끈다. 길을 따라 늘어선 벽면마다 조가비, 도자기, 유리, 테라코타, 아트타일, 유리자갈 등을 이용한 벽화가 하나같이 제주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집집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과 별명이 새겨진 정감 있는 명패를 하나씩 읽으며 걷다보니 마을쉼터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마을 어르신을 만난다. 서귀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만나 볼 수 있는 ‘人집’은 그야말로 사람의 냄새 물씬 나는 정겨운 길이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人바다

섶섬과 문섬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구리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人바다’는 이중섭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게를 잡던 곳이다. 그 자리에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게와 아이들-그리다>가 서 있다. 흰 사슴이 거대한 짐을 지고 있는 모습으로 정해진 길이든 아니든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고 전하는 <실크로드-바람길> 그리고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서예를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150여명의 서예인들의 작품을 현무암 판석에 새겨 넣는 <맨발로 걷는 문화마당> 등이 끝없는 수평선처럼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코스 내에는 정방폭포와 함께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탐라에 보냈다는 서복의 전설이 서린 ‘서복전시관’과 서귀포 바다에 안겨사는 중도의 화가 이왈종의 ‘왈종미술관’이 예술의 향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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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징검다리를 따라 걷는 <경계선을 넘어서>에서 거울에 비친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된다. ❷ 칠십리시공원은 서귀포 1번지 백록담이 있는 한라산이 가슴 가득 들어온다. ❸ 人집을 따라 걷는 길마다 동네 한바퀴를 그려넣은 정겨운 벽화가 자리한다. ❹ 무거운 돌덩이를 짊어지고 가는 흰 사슴이 우리들의 인생사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❺ 현무암 판석에 150여명의 서예인이 하나씩 쓰여진 글귀를 차근차근 읽어본다. ❻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삭막했던 군부대 담장에도 <흰 파도 검은 바위> 작품이 그려져 문화의 색이 입혀졌다. ❼ 서복전시관 앞 교통섬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알록달록한 볼을 감싸고 있는 손 모양의 작품이 놓여있다.

 

예술혼을 찾아가는 人길

마지막으로 소암로에서 이중섭문화거리는 산책길 탐방에 막바지에 이르는 ‘人길’이 있다. 1년간 바닥에서 천장까지 얇은 종이가 쌓인 정도로 글씨를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평생 붓을 손에 놓지 않았던 소암 현중화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 ‘소암기념관’은 여전히 그를 기리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기념관 앞에는 행복한 사진관 정방DP사가 자리한다. 1970년부터 정방폭포에서 신혼부부들을 찍어준 사진사가 제주도에 신혼여행 온 부부들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아 아날로그 향수를 전한다. 그리고 나면 코스의 마지막, 이중섭문화거리가 나온다. 쭉 뻗은 돌담길 사이에 이중섭 미술관과 이중섭 거주지가 마주보고 들어서 있다. 이중섭은 1평 남짓한 구석자리 방 한 칸에서 가난한 피난살이를 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했기에 행복했던 서귀포의 삶을 담배 은박 포장지에 그려냈다. 이중섭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중섭미술관’을 찾아가자. 섬, 아이들, 게와 물고기 등을 소재로 한 원화 11점이 전시되어 있고, 아내와 주고받은 절절한 그리움이 적힌 편지가 여러 장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이중섭문화거리는 문화예술디자인 시장으로 활기를 더한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공예품을 전시, 판매, 체험할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한 예술전시체험공간이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생동감 넘치는 예술을 만나고,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희망의 단편을 본다. 바다에서 꿈을 꾸는 이들을 만나고, 길 속에 녹아있는 문화에 녹아든다. 서귀포 품 속에서 어우러진 작품들, 그리고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작가들과 교감한다. 이 길의 끝에는 우리는 유토피아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이강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촬영장소 / 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작가의 산책길

매주 토·일 오후 1시 (사전 참가신청)  문의 : 서귀포시청 문화예술과 ( 064-760-24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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