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억새꽃이 출렁이는 따라비오름

따라비1

 

따라비

제주의 가을은 억새꽃 물결이 출렁이면 본격적인 가을이 된다. 그래서인지 한라산 단풍 보다는 오히려 억새꽃이 제주 가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은빛 억새꽃 물결이 온 섬을 뒤덮을 즈음이면 감귤밭에선 감귤이 노랗게 익어 가면서 제주 섬은 가을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오름에는 억새꽃이 활짝 피어 능선미가 극치를 이루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가을의 정취가 사라져 버려 아쉬움을 더한다.

 

따라비오름_1

안개가 자욱하던 날 따라비 정상을 올랐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안개가 오름 자락으로 깔리면 신비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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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알오름의 무덤. 오름은 제주사람의 삶의 터전이자 주검의 고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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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 정상에서 본 삼둥이 굼부리(분화구)

 

제주도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가지를 벗어나면 섬 어느 곳에서나 은빛 찬란한 억새꽃 물결을 볼 수가 있었으나 최근 급작스러운 개발과 중산간 야산지역 개발과 과다한 개간으로 서서히 그 옛날의 가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대부분 오름에는 삼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아름다운 능선미는 물론 억새꽃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몇몇 오름은 아직도 억새꽃밭이 남아 있어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오름의 여왕이라는 ‘따라비오름’이다. 산새가 아기자기한 삼둥이 분화구를 가진 따라비오름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마을 북서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표고 342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 위에는 굼부리(분화구)가 세 개가 형성되어 있어 더욱 신비롭다. 도내 오름 중에 ‘가재오름’(비양도), ‘느지리오름’(한림읍 상명리), 송악산으로 잘 알려진 ‘절울이오름’ 등은 분화구가 둘인데 분화구 세 개를 거느린 오름은 따라비오름뿐인 셈이다. ‘용눈이 오름’도 세 개의 분화구를 가졌다고 하지만 그곳은 한 개의 분화구에 세 칸으로 나누어진 분화구라 ‘따라비’처럼 독립된 세 개의 분화구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제주도 오름의 이름을 듣다보면 아주 생소한 말이 가끔 나온다. 제주사람들조차 잘 알 수 없는 말들로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방언이거나 고어, 고구려어에 바탕을 둔 것, 몽골식 지명이라는 주장도 있을 만큼 어렵다.

따라비도 그중 하나인데, 보통 설명할 때는 따래비(땅하라비, 地祖岳)라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이 오름 주위에 모지오름, 장자오름, 새끼오름이 모여있어 가장 격이라 하여 ‘따애비’라 부르던 것이 ‘따래비’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 제주대학교 강영봉 교수는 “이 오름의 이름은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1703)를 비롯한 옛 지도에는 ‘多羅非(岳)’로 표기되어있다. ‘따라비’의 <따>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없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따라비’와 차이가 없는 셈이다. 무슨 뜻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옛 지도에는 ‘地祖岳’으로 표기되어 있고 약 200여 년 사이에 ‘多羅非’가 ‘地祖岳’으로 바뀐 것이 ‘따라비’의 뜻이 ‘땅 할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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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따라비가 탄생할 때를 연상케 하는 일몰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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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따라비

 

오름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대개 주변의 오래된 묘비에 새겨진 것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그동안 지명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많고, 또 한자표기에 의한 오류도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비오름’ 주변 묘비에는 대개 ‘地祖岳’ 또는 ‘地翁岳’으로 표기돼있고, ‘多羅肥’라는 것도 보이며 한글로 따라비라 적힌 것도 있다. 제주도 오름 이름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의견이 있지만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다라비=다라미, 즉 ‘높은 산’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고구려어에 뿌리를 둔 지명이 많이 남아있음을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명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따라비오름 넓은 초원 위에 우뚝 솟아있는 오름으로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오밀조밀한데 어우러진 모습으로 서 있다.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서 보아도 어느 한 곳 나무랄 데 없이 매끄러운 등성이로 연결되어 한 산체를 형성하고 있다.

가을철 매끄러운 등성이에 억새꽃이 활짝 필 때면 신비의 능성미를 보여준다. 그래서 따라비오름은 가을철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삼둥이 분화구를 거느린 가을 따라비오름에 올라 억새꽃이 만들어 내는 장관과 마주해 보기 바란다.

 

 

아이러브제주도장


글,사진 / 서재철

•1947년 제주출생   •1983년 제주일보 사진부장  •1990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1998년 자연사랑 미술관 관장(현)

저서 : 제주해녀, 한라산, 한라산 노루, 한라산 야생화, 바람의 고향 오름, 이름모를 소녀, 몽골·몽골사람, 제주생태시리즈-제주의 야생화, 제주의 말·노루, 제주의 곤충, 제주의 버섯, 제주의 새, 화산섬 바람자리 오름, 날마다 솟는 성산, 기억속의 제주포구, 화산섬 제주, 신비의 흔적, 제주의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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