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성불오름

성불오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난 가을의 기억을 머금은 억새가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는 성불오름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주변 오름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이프러스골프장 너머로 두 개의 오름이 보이는데 앞의 것이 대록산(큰사슴이오름) 바로 뒤의 것이 소록산(족은사슴이오름)이다.

 

 

두 봉우리가 감싸 안은 성불천의 맑은 물 수수한 듯한 오름에 林과
川이 조화를 이루니 잔재미가 있는 오름

성불오름

 

 

성불오름의 형태가 성불한 스님의 좌정한 모습인지 여인네의 옥문인지 오름 따라 길 따라가다 보면 마음 가는 데로 보이겠지 하며 성불오름으로 향한 날은 제주에 특히 많다던 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성불오름 아래 자락에는 경주마목장이 있어 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던 그 흔한 삼나무 한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직통으로 그 바람을 다 맞았더니만 정신이 없고 몸뚱이마저 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꼭꼭 움켜쥐어야 했다. 성불오름은 대천동에서 성읍리 쪽으로 가다보면 지나치는 오름으로 드넓은 초지에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그 위에 좌정한 듯 앉아있는 두 개의 봉우리는 평화로움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 여유 있어 보였던 오름이 바람을 만나니 휘청휘청 사람의 몸과 마음을 쥐며 불며 흔들어댄다.

 

 

성불오름1

 

 

드센 바람을 가슴으로 안으며 성불오름으로 출발! 오름 입구는 창고 같은 건물을 지나 목장의 중간 참에 난 길이다. 목장에 있는 말들은 경주마라서인지 튼튼하고 매끈하게 빠져서 한 인물들 한다 싶다. 천천히 말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하면서 여유를 부렸으면 좋겠지만 제주의 거친 바람이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바람과 맞서기를 포기하고 거의 뛰다시피 도착한 오름, 그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우거진 숲이 시작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은 잦아든다. 성불오름은 말굽형의 화구를 가지고 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에워싼 골짜기 사이에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올라있는 곳에 색깔 다른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속에 은밀하게 ‘성불천(成佛泉)’이라는 샘이 숨어있다. 그래서 옥문형이라고 불리는데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있던 창고 앞에서 바라보면 꽤 그럴 듯해 보이는 말이다.

오름에 들어서면 바로 양 쪽으로 갈래 길이 나온다. 조금 운동 삼아 가보겠다 싶으면 오른쪽 길로, 천천히 산책하며 걷겠다 싶으면 왼쪽 길로 가는 것이 좋다. 오름을 둘레둘레 걷다 보면 바로 이곳에서 만날 터이다. 삼나무와 측백나무 무성한 숲길을 따라 오르기를 10여 분, 능선에 서니 해송과 억새밭이다. 대록산, 따라비오름이 보이고 그 너머 한라산, 이질적인 풍경으로 골프장이 눈에 들어온다. 굴곡이 살짝 있는 능선을 따라 5분여를 걸으면 바위가 박힌 정상에 다다르는데 정상인지는 꽂아놓은 깃발 하나 보고 짐작하는 정도다. 바위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며 깎여나갔고 위태롭게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 지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오름 군락들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비치미와 개오름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까지…. 울창한 숲 사이로 살짝살짝 나타나는 풍경에 감질 맛이 난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제주의 바람, 그 바람 너머 시원한 풍경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되 뇌이며 한쪽 뺨을 때리는 바람에 다른 쪽 뺨을 내민다. 가슴까지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오는 듯 도시의 묵은 때가 한꺼번에 씻어 내려가고 그 자리에 시원한 제주의 초록이 들어차는 느낌이다. 이래서 오름을 오른다. 일상을 비우고 그 안에 자연과 여유를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성불오름3

❶ 오름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인공 조림된 삼나무 숲이 울창하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행에 무리가 없다. 보기에는 경사가 급해 보이지만 어린 아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며 침엽수림이 울창하여 삼림욕을 즐기기 좋다.  ❷ Y자로 물이 유입되고 그 아래에는 원형으로 돌담을 둘러 물을 모아두는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성읍 주변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갈증을 달래주기에 충분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❸ 잘려진 나무 둥치는 이끼들의 생육지가 되었다. 햇살을 받아 융단처럼 빛나는 이끼 군락이 봄이 머지않았음을 얘기해주고 있다.

 

 

이제 하산길이다. 말굽의 오른쪽으로 올랐으니 왼쪽으로 하산이다. 하산길 중간에 왼쪽으로 계곡 능선을 타고 길이 하나 나있는데 이 길을 지나치면 성불오름의 정수를 놓치는 셈이니 꼭 들러 가자. 채 50m도 안되지 싶은데 Y자의 형태로 물이 흐르는 샘이 보인다.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물이 솟아 흘러나오는 성불천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정의현 성내에는 샘이 없어 성읍주민들은 이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 기록대로라면 물이 콸콸 쏟아져야겠지만 지금은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정도다. 이외로 물은 지금도 맑고 깨끗하다. 예전에 성불오름 어딘가에 성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데 흔적은 찾기 힘들지만 아마 성불천이 있는 자리 근처가 아니었을까 한다. 성불천에서 5분 정도 내려가면 처음 시작하였던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숲과 물이라는 조합이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하나의 사연을 남기는 성불오름, 잔잔하나 심심하지는 않고 숲이 우거졌으나 간간히 풍경을 보여줄 줄도 아는 제 나름의 여유를 지니고 있고 찾는 이를 여유롭게 하는 오름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찾아가는 방법 / 번영로(97번도로)변 대천동 사거리에서 성읍리 쪽 2.0km 지점에 오름 표지석이 있다. 말 목장이 있으며 목장 사이에 난 길을 따라 오름쪽으로 300m정도 가면 기슭에 도착한다. 정상까지는 넉넉히 잡아 20분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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