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바람의 언덕에 머물다 – 둔지오름

둔지오름

둔지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풍경. 한라산이 구름 속에 살포시 드러나고 그 아래 수많은 오름들이 봉긋봉긋 솟아있는 제주만의 아름다움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바람의 언덕에 머물다

둔지오름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둔덕을 이르는 제주어이다. 그렇다면 둔지오름도 오르기 편안한 언덕정도일거라고 상상하겠지만 의외로 복병이 있는 오름이다. 오름이 말굽형이다. 남쪽을 향해 넓은 말발굽 모양의 완만한 화구를 이루고 있으며 양쪽 능선으로는 화산쇄설물이 쏟아져 내려 꽤 가파르다. 능선을 따라 등산로가 나있으니 얕보아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표고 282m, 비고 152m의 둔지오름은 흔히들 둔지봉이라고 부른다. 『탐라도』에 ‘둔지악(屯止岳)’으로 그 외 ‘둔지악(屯池岳)’, ‘둔지봉(屯地峰)’ 등으로 표기되어있다. 이는 모두 둔지오름의 한자어 표기로 오름의 분화구 안쪽에 크고 작은 울룩불룩한 언덕들이 널려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

 

둔지오름2

 ❶ 삼다의 섬 제주에 많은 바람에 의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동쪽 바닷가 풍경을 이국적으로 만들고 있다. ❷ 삐뚤빼뚤 제주의 밭들은 대부분 모양이 이렇다. 알오름과 무덤들이 어우러져 유택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❸ 철 지난 억새가 하얗게 백발을 드러내고 있다. 산담 자락에서의 휴식, 다랑쉬오름이 웅장하다. 

 

둔지봉은 둔지라고 보기에는 높은 오름에 속하여 오름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실제 오르며 분화구 안의 수많은 알오름들을 보니 둔지의 느낌이 살아난다. 팥죽처럼 보글거리는 알오름들 사이에는 산담에 둘러싸인 무덤들이 산재한다. 화산 분출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난 둔지들과 사람이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 놓은 무덤이 공존하여 만들어낸 자연과 인공의 조화, 유택(幽宅)도시라는 둔지봉 주변에 대한 일컬음이 알맞아 보인다. 망자의 거처가 낮은 언덕들에 기대에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명당자리라고 하여 산남 산북 가릴 것 없이 꽤 멀다 싶은 지역에서도 찾아와 묘자리를 썼던 곳이다. 하나씩 하나씩 무덤이 늘어나고 이제는 하나의 풍경처럼 둔지봉만의 독특함을 그려내고 있다.

둔지봉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하면 숨겨진 아름다움 찾아내기이다. 제주의 바람을 사랑한 김영갑이 용눈이오름과 함께 사랑한 곳이 바로 이 오름이다. 두모악 갤러리의 한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구름언덕이 가까이 있는데 평범한 언덕에 소나무 네 그루가 양옆에 서있어 사진 속에서 걸어 나오는 바람언덕이다. 하지만 제주에 대한 앎이 그만큼 치열하지 못하여서인지 눈으로 보면서도 과연 두모악 갤러리에 걸려있는 그 장소인가 싶다. 사람 안에 내재된 감성의 차이일까. 내가 찾아내지 못한 바람의 감성과 오름이 전하는 메시지를 그는 찾아냈기에 이렇듯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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❹ 둔지오름 표지석을 시작으로 겨울의 초입에 떠나는 오름나들이, 오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상에 서면 동부권의 내로라하는 오름들이 눈에 잡힌다. 둥근 달을 머금은 다랑쉬오름, 월랑봉(月郞峰)이라는 한자어 표기보다 다랑쉬가 좋다. 이름만으로도 시적이다. 제주어에는 낭만이 남아있다. 다랑쉬를 말할 때 혀끝에서 굴러가는 감각이나 언어 자체로서의 느낌도 정스럽다. 유난히 억새가 아름다웠던 손지오름, X자로 조림된 삼나무군락이 이채로운 오름이다. 돝오름은 천년의 비자나무숲의 호위를 받는 오름이다. 돝이 돼지라는 의미라지만 어디가 돼지얼굴인지, 몸뚱이인지 구분이 안가는 나로서는 비자림 옆에 위치한 유난히 가을 꽃향유 군락이 아름다웠던 오름으로 기억한다. 높은오름은 과연 가장 높은 오름인가 하는 오름이다. 왠지 다랑쉬의 그늘에 가려있다는 느낌이랄까. 이에 반해 가장 나지막해 보이는 아부오름은 그 안에 원형 굼부리의 장대함으로 뭇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오름이다. 정상의 오름 관망도에 등장하는 오름들을 되집다 보니 멀리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허리를 세운 풍력발전기를 이국적이라고 해야 하나, 제주의 자연미를 거슬린다고 해야 하나 제 나름대로 해안가 풍경이 되고 있다. 동쪽이 오름왕국이라고 하지만 둔지오름 주변에는 오름들이 인접해 있지 않다. 그래서 더 독보적이다. 한동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 둔지오름에 관해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적막의 도시에도 해마다 몇 차례 오일장 같은 날이 찾아온다. 설날이나 추석, 한식날, 벌초기이다.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그것들은 또 얼마나 가관인 풍경일까…….” 그림으로 그려지는 오일장터에 북적이는 사람들처럼 적막한 이 유택도시를 생과 사가 흥겹게 소통하는 풍경으로 그려내고 있으니 그의 오름 사랑이 애달프다. 둔지오름에서 내려와 동쪽으로 내달리면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과 성산일출봉이 멀지 않으니 바닷바람을 쐬며 제주의 겨울 맛을 보는 것도 좋겠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찾아가는 법 / 제주시에서 출발하여 1136번 도로를 이용 송당리사거리에서 비자림쪽으로 좌회전, 비자림입구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진입, 비자림과 덕천리를 잇는 길가 기슭에 오름 표지석이 있고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덕천리 쪽으로 400m를 가서 왼쪽의 길을 따라 500m를 더 가면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소요시간 / 정상까지 20분정도 소요     난이도 /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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