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오름은 여전하나 역사의 흔적은 간데없다 – 당오름

당오름

오름은 여전하나 역사의 흔적은 간데없다.

Dang Oreum

 

당오름이란 이름을 얻게 한 당(堂)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전쟁 당시의 일본군 진지의 자국도 흐릿해져가고 있다. 세월의 흐름 앞에 인간의 역사는 점차 그 흔적을 소멸시키나 자연은 그들의 섭리대로 꽃들을 피우고 지며, 이파리를 돋고 낙엽을 떨구며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기도 하고 오름을 이불 삼아 겨울잠을 잔다. 오름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당오름은 언제라도 와서 구릉지에 앉아 봄의 햇살을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오름이다. 여행자의 마음을 소박하게 감싸 안는다.

 

 당오름1

❶ 오름자락에 산담에 둘러싸인 무덤이 보인다. 양지바른 언덕에서 봄햇살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친근하다. ❷ 완만한 구릉을 이루는 능선이 걷기에 편하다. 오름을 걷는 내내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마음을 드넓게 만든다. ❸ 4월의 오름에 초록이 조금씩 밀려들고 있다. 새파란 하늘과 구름이 조화로운 봄날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구별을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은 현재의 당오름에서 취하는 휴식이 가장 의미 깊다. 오름은 제주의 온갖 아름다운 자연환경 중에서도 반드시 지켜야할 소중함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타향살이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너른 존재. 난생 처음 오름을 대한 나그네일지라도 오름은 그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낯선 오름 자락에서 그동안의 슬픔을 내려놓고 그 품에 안기에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자연의 살 냄새를 맡아보라. 봄날의 당오름은 그렇게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미처 다 오지 못한 봄의 서곡을 연주하고 있다.

당오름은 동광마을 북쪽 2.5km에 있다. 오름 자락에 당(堂)을 가지고 있다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제주의 360여 개의 오름 중에 당오름이라는 오름명이 여럿 있다. 안덕면에 위치한 이 오름 외에도 구좌읍 송당리, 조천읍 와산리, 한경면 고산리에 당오름이 있다.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민간신앙이 성행하였다. 제주에 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제주를 들러보고 쓴 남환박물(南宦博物), 즉 제주의 박물이라는 책에 보면 ‘숲이나 내, 못, 언덕, 무덤에 난 나무 같은 것을 모두 섬겨, 신당을 만들어서 해마다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무당들을 앞세워 재물들을 던지며 제사를 지낸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바람과 태풍, 홍수 등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수시로 일어났던 섬으로 제주사람들은 이를 관장하는 신이나 조상에게 빌며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당오름도 그러한 당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며 오름에 당(堂)자가 붙은 것을 보면 꽤 규모가 큰 당이었으리라 추측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름은 수많은 세월을 겪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당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인간은 자연에게 있어서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인데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의 자연의 내 것 인양 남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당오름2

➍ 오름에 각시붓꽃이 피어있다. 양지를 좋아하며 여름이 오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꽃말이 기별이라고 하니 봄소식을 제대로 알려주려나 보다. ➎ 4월에 피는 솜방망이다. 건조한 양지에서 자라는 꽃으로 풀밭오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른 봄 잎이 올라올 때 잎 전체가 잔털로 덮여 있지만 자라면서 잔털은 많이 없어진다. ➏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흔적으로 뻥 뚫린 굴 입구에 잡풀이 무성하다. ➐ 당오름 가까이에 있는 정물오름이 어렴풋이 보인다. 솜방망이와 아직 새순을 돋우지 않은 잔디가 5월의 봄을 기다린다.

 

당오름은 대부분이 풀밭이어서 봄에 오르기 딱 좋은 오름이다. 북쪽이 조금 경사도가 있지만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줄기와 잎에 고운 솜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노란 솜방망이 꽃이 보인다. 4월의 꽃이다. 5월이면 개민들레가 물결을 이룰 것이다. 개민들레는 외래종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식물이라 하여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그저 노랗게 아름다운 꽃이다. 남사면이 완만한 구릉을 이루면서 걷기에 편하고 넓게 드러난 원형 분화구와 기슭의 여러 개의 작은 봉우리가 이채롭다. 정상까지 소요시간은 30여분, 비고는 118m로 그리 높다고 할 순 없지만 정상 굼부리까지 능선을 꽤 오래 걸어야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분화구 동쪽의 다섯 개의 봉우리는 떡 찌는 시루들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 증자를 쓴 증오봉(甑五峰)이라고 불린다. 삐죽삐죽 날을 세운 산이 아니다. 둥글둥글 달래고 품어주는 자연의 너른 마음으로 어린 자식들을 품고 있다. 분화구 안은 사람의 발이 덜 닿아서인지 가시덤불과 초록이 짙다. 그 안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자리가 남아있고 오름 옆구리에도 잡풀에 가려져 있지만 뻥 뚫린 굴이 몇 개 있다. 오름에서 흔히 만나는 산담에 둘러싸인 묘, 양지바른 언덕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자연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사람도 이 오름에 오르면 절로 취해지는 모습이다. 얼굴을 들어 따뜻한 봄 햇살을 쬐고 한들거리는 바람을 느낀다. 눈을 들어 지그시 응시하게 되는 경이로운 자연, 오름을 오르는 이유는 정상에 올라 광막한 경치를 즐기는 이 순간의 감동 때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섬 제주의 흔적을 발끝으로 느끼며 그 위에 내려앉은 제주인의 삶의 흔적을 조심스레 밟아 가는 차분한 여정, 당오름이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찾아가는 방법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68-1번지

평화로(1135번)와 한창로(1116번) 등이 만나는 동광육거리에서 금악리 방향 2.4km 송악목장 부근에서 오를 수 있다. <소요시간 :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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