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문화

원도심 문화유산 탐방 – 원도심 역사 유적길

원도심메인

제주읍성과 그 위에 세워진 제이각. 현무암을 켜켜이 쌓아 올리면서 중간에 잔돌끼움을 하는 허튼층쌓기로 축성한 제주읍성은 어느 읍성보다 단단해 보인다. 제주읍성은 탐라국시대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원도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캘리 지붕Course 1 – 원도심 역사 유적길

 

원도심지도

 

2000년 제주 역사 속으로

현재 제주의 중심이라하면 제주도청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신제주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몇 년 전만해도 제주사람들은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이 있는 삼도2동을 비롯해 건입동, 일도1동 일대에서 만남을 가졌으며 새로운 문화는 이곳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탐라시대부터 제주의 중심을 이뤘던 곳으로 흔히 제주사람들은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와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겪으면서 2000년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희미하게나마 그 흔적을 간직한 것들이 있다. 이 일대를 역사유적길, 옛길, 유배길의 3가지 코스로 나누고 하나씩 돌아보려 한다.

 

원도심1

1. 관덕정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이중기단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짜리 단층 팔작지붕으로 창호문 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저형식의 건물이다. 2. 성내교회 구한말 도내에 개신교 전도를 위해 세운 최초의 교회.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에 들어와 활동하면서 개신교는 포교가 이뤄지지 시작한다. 3. 조일구락부(구 현대극장) 광복에서 한국전쟁까지 이어진 해방 이후의 격동의 혼란기에 주요장면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민전(민족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를 비롯해 조선민주청년동맹, 서북청년단 제주도본부 결성식 등이 모두 이 장소에서 열렸다. 4. 제주화교 소학교 5. 향사당 조선시대 마을에 나이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주요한 사안들을 의논하던 청사이다. 가락천 서쪽에 있었으나 1691년(숙종 17) 김동 판관이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6. 박씨초가 도심 중심에 이런 건물이 있었나 할 정도로 옛 전통모습을 잘 갖추고 있는 초가이다.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말을 타고 내릴 때 썼던 하마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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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칠성대 탐라국의 발전과 무사안녕을 위해 북두칠성을 향해 기원을 빌었던 봉제의 제단으로 추정되고 있는 7곳 중 첫 번째 별인 천추성의 자리다. 칠성대는 원도심 내 북두칠성의 7개의 별처럼 제단도 북두칠성의 모양을 본떠 7개의 제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 남문터 남문의 이름은 정원루였다. 일제 하인 1918년 3개의 성문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헐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9. 제주성지 제주목의 방어를 위해 둘렀던 읍성으로 둘레가 3.3km에 달했다. 이원진 목사가 지은 탐라지에 따르면 격대가 27곳, 여장이 400여개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1920년 중반 일제가 산지항 축항공사를 할 때 성담을 가져다 써 버려 훼손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10. 제주성지 제이각 11. 동문백화점 정식명칭은 (주)동문시장이다. 제주 현대 건축가 1세대인 김한섭이 설계한 이 건물은 1965년 4월 27일 개관했는데 백화점처럼 쇼윈도를 갖추고 극장까지 있는 등 지금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50년 전 도내 첫 멀티플렉스 건물이다. 12. 동자복 원도심의 중심에서 좌우에 세워진 복신미륵중 동쪽에 세워진 미륵석불이다. 비슷한 거리에서 원도심을 굽어보며 서 있는 미륵석불은 성안 사람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사악한 기운이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수호신적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13. 동문터 동문의 이름은 처음에는 제중루였다가 나중에 연상루로 바뀐다. 1914년에 철거된다. 남문과 서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자료는 있으나 아직까지도 동문의 사진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그 앞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의 사진자료만 남아 있다. 14. 공신장터 원도심 내에서 최고의 경관과 위용을 자랑하던 곳에 세워졌던 정자가 있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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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원도심 중심에 위치한 전통초가 ➋ 남문에서 서문으로 이어지는 남문샛길의 좁은 골목길.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은 골목길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➌ 동문에서 삼천서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옛 골목길 ➍ 세찬 물이 뿜어져 나오는 숨골에서 유래한 구명골의 현재 모습 ➎ 남문로터리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복원된 제주성지.

 

 

제주의 원도심은 어던 곳일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을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양·공주·경주 등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수도였고 개경은 고려의 수도였으며 한양은 조선을 거쳐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이들은 모두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 나라의 수도이자 도시였다. 그렇다면 제주의 원도심은 어떤가? 탐라국의 수도였고 최근까지도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원도심은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제주의 원도심은 이렇듯 긴 역사를 가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고도(古都)의 모습은 거의 없다. 수백 년 된 건축물들과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유럽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들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못해 부끄러울 정도이다. 일제에 국권을 상실당하고 파괴가 시작된 후 국권을 되찾은 이후에도 서구문물이 거세게 밀려들면서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진 것도 적지 않다. 지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산들은 관덕정과 오현단, 복신미륵, 그리고 10여 년 전 복원된 목관아 정도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제주 원도심. 하지만 지금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과거의 모습과 만날 수 있다.

우선 원도심에는 9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성이 있었다. 제주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탐라국의 중심부 역할을 하던 시대에 조성됐던 무근성[陳城·묵은성]을 활용하여 축성이 시작됐고 계속해 확장해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도 3.3km에 달해 다른 지역의 읍성들과 견주어도 작은 규모가 아니다. 제주성에는 동문과 서문을 비롯해 남문 등 3개의 문루가 있었고 중인문과 소민문 등 2개의 간성의 문도 있었다. 하지만 연상루로 불렸던 동문과 백호루에서 진서루로 이름을 바꿨던 서문이 일제 하인 1914년 헐리며, 정원루였던 남문도 1918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어 1920년대 중반 일제가 산지항 축항공사를 하면서 읍성의 돌들을 매립재로 사용해버려 훼철되는 운명을 맞는다. 남아 있는 문루의 사진을 보면 가장 늦게 헐리는 남문의 경우 기왓장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448년(세종 30) 신숙청 목사 때 세워진 관덕정(觀德亭)은 지금까지 11차례의 보수 과정울 거치며 제주의 역사를 570여 년간 지켜보며 서 있다. 관덕정 앞 광장은 제주역사의 현장이었다. 도내 최초의 오일장도 이곳에서 시작되며, 신축민란 때 수백명이 처형된 공간이기도 했고, 4.3의 도화선이 되는 3.1절 기념집회가 열리는 등 원도심 내 중심 광장이었다.

제주성의 수호신적 기능의 역할과 함께 성안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위하여 세워졌으리라 여겨지는 커다란 복신미륵 석불도 제주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세월의 무게를 이기며 의연하게 서 있다. 또한, 1908년 이기풍 목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내에 최초로 세운 성내교회도 자리하고 있다.

복원된 제주성지 북쪽으로는 아담하게 오현단이 자리하고 있다. 제주의 문화와 사상, 정신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모셔지는 오현단(五賢壇)에는 오현을 상징하는 조두석과 함께 김정과 송시열의 적려유허비 등이 남아 있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강용희(제주역사문화연구소)

사진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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