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음식 “보리”
제주에서 주된 양식은 보리였다. 꽁보리밥은 찰지거나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탱탱한 보리밥 알맹이가 입안에서 까끌까끌 돌아다니고 방귀 몇 번으로 금방 뱃속이 헛헛해진다. 논이 귀했던 제주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늦게까지 보리밥이 주식이었다. 그나마도 양껏 먹을 수도 없었다. 곤궁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목이 메는 느낌이 드는 보리밥, 하지만 더 이상 보리는 가난의 대명사가 아니다. 웰빙음식의 선두주자를 당당하게 꿰찬 건강 곡식이다. 꽁보리밥, 맥주, 빵, 차, 크런치 등 새로운 입맛으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오는 보리. 제주사람들과 함께 해온 ‘보리 이야기’를 펼친다.
➊ 보리이삭이 고개를 숙이면 수확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현대에 와서 보리는 건강을 위해 찾는 곡식으로 맥주, 빵, 차, 막걸리, 크런치 등에 사용하여 새롭고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 ➋ 가파도의 봄 색깔은 바람과 어우러진 청보리색이다. 가파도에서는 청보리를 테마로 매년 4월~5월에 걸쳐 한 달간 청보리축제를 연다. ➌ 어려웠던 지난날의 주식이었던 보리밥,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보리는 가난의 대명사가 아니다.
화산섬이라는 제주 탄생비화는 제주 섬 곳곳에 고스란히 지문을 남겼다. 화산 불길에 불살라진 돌덩어리들은 수분을 증발한 채 비 오듯 떨어졌고 그 후로 수만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물기를 머금지 못하고 흙과 돌의 중간 경계쯤에서 서성대며 푸석거린다. 제주도에서 서귀포 하논을 제외하고는 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이유다. 하논과 제주도 중산간에서 재배되던 밭벼 ‘산듸’로 적은 양의 쌀을 얻기는 했지만 제주에서 소비되는 쌀의 대부분은 물 건너온 귀한 몸이다. 쌀밥은 ‘곤밥(고운 밥)’이라 불렀다. 잔치나 명절, 제사 등 특별한 날에만 지어 먹었던 쌀밥, 50~60대는 1년에 몇 번밖에 먹을 기회가 없는 쌀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식게(제사)’가 끝날 때까지 밤을 꼬박 새우며 기다렸던 기억을 너나없이 얘기한다.
논이 아주 드물었으면 밭은 많았을까? 밭이라고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돌투성이 땅이라 ‘밭갈이를 생선뼈 발라내듯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하다. 밭의 돌을 골라내어 제주 섬 전역에 굽이치는 흑룡만리 돌담이 만들어졌다. 고된 세월의 흔적이 돌담 사이의 구멍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보리밭 이삭 사이로 부는 바람에 한을 토하듯 한꺼번에 숨을 내쉰다.
제주에서 5~6월에 수확하는 보리가 주식으로 으뜸이고 그다음이 조, 메밀, 콩 같은 잡곡이었다. 조, 메밀은 11월경에 수확한다. 봄과 여름에는 주로 보리밥을, 가을과 겨울에는 보리를 섞은 조밥을 먹었고 가끔 톨(톳)밥 이나 파래밥, 감제(고구마)밥을 먹었다. 자연적으로 건강식을 하며 살아왔던 셈이다. 보리가 익기 전에는 보릿고개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설익은 이삭으로 밥을 해먹었다. 보리의 초록 이삭만을 따서 끓는 물에 삶아내어 햇볕에 말린 뒤 손으로 비벼 얻은 초록빛 보리쌀로 지은 밥이다. 이를 ‘섯보리밥’이라 하였다. 춘궁기를 넘기면 조금 형편이 나아진다. 보리를 수확하여 ‘보리밥’도 해먹고 보리와 쌀을 섞은 ‘반지기밥’도 해먹었다. 제주에서는 쌀 한 톨 없이 온통 보리쌀로만 지은 꽁보리밥만을 ‘보리밥’이라고 한다. 수확한 보리로 특별한 호사를 부리기도 하였는데 미숫가루다. 다른 지방에서는 쌀이나 찹쌀을 이용해 미숫가루를 만들지만 제주에서는 도정을 하지 않은 보리를 뒤집은 솥뚜껑에 볶아 만들었다. ‘보리개역’이라 하였는데 여름철 최고의 별미로 쳤다. 보리개역이 만들어지면 제일 먼저 시부모님께 갖다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역 한 줌도 안 주는 며느리’라고 동네에서 욕을 들었다. ‘한 달에 개역 세 번 하여 먹으면 집안 망한다.’라는 속담이 의미심장하다. 그깟 미숫가루라고 하겠지만 보리가 얼마나 중요한 식량인데 군것질하듯 식량을 축내는 것은 삼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제주사람들의 음식문화를 보면 그들의 곤궁했던 삶의 모습도 보이지만 더불어 살았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크고 둥근 놋그릇인 ‘낭푼’ 또는 나무로 만든 둥근 바가지인 ‘남박’에 보리밥을 담아 상 가운데 놓고 온 식구가 같이 퍼먹었다. 둥그렇게 모여앉아 먹는 밥상에서 함께 고난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자라지 않았을까. 밥상은 아낙네들이 물질(해녀 잠수)나가고 난 뒤에도 차려져 있다. 끼니가 되면 식구들은 국만 떠와서 밥을 먹었고 동네 꼬마들도 어느 집이고 들어가서 숟가락 하나로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낭푼밥상은 보리밥 먹던 어려운 시절에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했던 제주사람들의 정이 만들어낸 밥상이다.
여름철 더운 날씨에 귀한 보리밥이 쉬었다면? 제주에서는 상한 밥도 버리지 않는다. 누룩을 잘게 부수어 상한 보리밥과 섞어 깨끗한 물을 부어 항아리에 담아두면 발효가 되어 ‘보리쉰다리’가 만들어진다. 알코올이 살짝 들어가 있고, 달콤하고 소화가 잘되며 씹을 필요가 없어서 노인들도 즐겨 먹던 유산균 음료다. 지금은 식생활이 급속도로 서구화되고 입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운 음식이 지천이어서 ‘개역’이나 ‘쉰다리’를 맛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
지금까지의 제주보리 이야기는 어려웠던 시절과 맞물려 짠했다. 이제부터는 새 옷을 입은 제주 보리를 즐겨보자. 맥주의 주원료는 보리를 싹틔운 맥아다. 크래프트 비어를 직접 빚는 이들이 제주보리의 탁월함을 알아보았다. 양조장에서 제주산 보리를 넣어 수제 맥주를 만들어 진짜배기 맥주를 원하는 이들을 충족시킨다. 여름철 시원함으로 목을 축여주는 맥주 한잔에 제주 보리가 사르르 녹아있음을 잊지 말자. 끝없이 펼쳐지는 보리밭을 거닐며 마음을 초록의 일렁임으로 채우고 싶다면 보리밭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가파도로 향하는 것이 좋겠다. 보리밭 사이를 걷다 보면 마음에 찾아드는 평온과 감동이 심신에 깊은 휴식을 안긴다. 파릇하게 올라온 보리 새순은 덖는 과정을 거친 후 차로 만들어진다. 칼륨과 칼슘이 특히 풍부한 보리순차는 한겨울을 이기고 돋아난 보리의 생명력을 음미하는 방법이다. 쌀이 귀하니 떡은 더 귀했던 제주에서 차례상에 올렸던 보리빵이 담백한 맛과 건강에 좋은 빵을 찾는 이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초콜릿에 제주 보리를 넣어 고소함과 바삭함이 입 안 가득 퍼지는 제주보리크런치 또한 인기다. 제주 보리의 건강한 변신이 다양하다 못해 무궁무진하다. 가난했던 기억 속에 있던 보리가 현대인들에게 우수한 품질의 건강곡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순수 자연에서 자라는 제주 보리의 순수함이 사람들의 입맛을 끌어당긴다. 봄날 초록으로 흔들리는 제주 보리밭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보리를 이용한 음식을 맛보면 몸까지 좋아진다.
보리밥
물이 빠져버리는 토양 탓에 논이 귀했던 제주는 같은 이유로 쌀도 귀했다. 쌀밥은 제삿날, 잔치, 명절에만 먹고 평소에는 갖은 곡물을 섞은 밥을 주로 먹었다. 그중 보리밥은 까끌까끌하고 먹고 나면 금방 헛헛해서 손가락을 쪽쪽 빨며 곤밥(쌀밥)먹을 날을 기다리곤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되어 쌀밥이 흔해지고 보리밥이 건강하고 맛있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채소 듬뿍 쌈을 싸 먹어도 맛있고 비빔밥으로도, 고기와 함께라도 맛있다.
·낭뜰에쉼팡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343 / 064-784-9292 / 09:00~20:00
·어머니와 장독대(본점) 제주시 아연로 156-9 / 064-743-7889 10:00~21:00 (첫째, 셋째 화요일 휴무)
보리빵
누르스름하고 생김새도 심심한 보리빵은 첫 만남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반을 쪼개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고 곰곰이 씹어 봐도 맛도 맨송맨송해서 도대체 정체가 뭔가 싶을 것이다. 하지만 꼭꼭 씹다 보면 보리 특유의 향기와 고소함, 은근한 단맛이 올라와서 제법 중독적인 맛이다. 최근에는 팥이나 쑥을 넣은 보리빵도 많이 팔고 있어서 한층 편하게 접할 수 있다.
·덕인당 주시 조천읍 신북로 36 / 064-783-6153 09:00~20:00 (매진 시 영업종료, 둘째, 넷째 일요일 휴무)
·숙이네 보리빵 제주시 애월읍 애월로 118 / 064-799-1777 05:00~20:00 (매진 시 영업종료, 셋째 일요일 휴무)
맥주(제스피)
제주 맥주보리와 홉, 효모와 제주의 천연화산암반수를 사용해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만드는 순수한 제주지역 맥주다. 오직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들러 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제스피 매장에서 라거, 페일에일, 바이젠, 스타우트, 스트롱에일의 다섯 가지 수제맥주와 맥주에 가장 어울리는 안주를 맛볼 수 있으니 한국 맥주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이곳에서 날려보자.
·제스피 제주시 신대로16길 44 / 064-713-7744 18:00~다음날 01:00 (연중무휴)
보리막걸리(보리쌀로 빚은 막걸리)
보리 만든 탓에 쌀막걸리보다 진하고 탁한 예상밖 색깔에 그릇에 따르면서 한 번 놀라고 막걸리 특유의 강한 쿰쿰한 발효 향기에 또 한 번 놀란 조금은 거친 까끌까끌한 맛이 느껴지고 단맛이 적어 어떤 안주에나 어울릴 듯하다. 가파도 청보리가 함유되어있다고 하니 맑은 하늘 아래 깨끗한 가파도의 공기를 마시며 자란 보리를 생각하며 마시면 더욱 상쾌하게 즐길 수 있다.
·문의 : 천년주가영농조합 080-635-0168
보리차(제주 청보리)
보리를 볶아 두었다가 끓여 마시는 보리차는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음료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라도 그만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사실 보리차만큼 구수하고 은근한 단맛이 맛있는 음료도 없다. 최근에는 제주보리100%로 만든 보리차가 페트제품으로도 나오니 더욱 간편하게 제주 보리의 맛을 만날 수 있다.
·문의 비케이바이오 070-8787-0606
보리크런치 쌉쌀한 초콜릿 속에 보리파핑볼이 콕콕 박혀있다. 가볍게 부서지는 크런치가 아니고 꼭꼭 씹히는 독특한 식감이라 기존의 크런치초콜릿과는 맛의 차이가 느껴진다. 특유의 식감은 내가 곡식을 먹고 있다는 느낌에 건강한 군것질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제주보리만 100% 사용한다고 하니 더욱 믿을 수 있고 양도 푸짐해서 선물용으로도 좋다.
·문의 에버그린 064-764-5301
효월청보리순차
청정 제주의 자연에서 나온 야생초를 다양한 차로 개발하는 효월에서 청보리순차도 내놓고 있다. 청보리의 어린 새싹을 채취하고 정성 들여 말리고 덖는 수제 가공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다이옥신과 같은 해로운 환경호르몬과 유해산소를 제거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효능이 있다. 풍부한 칼슘과 비타민C는 향긋한 티타임의 덤이다.
·효월영농조합법인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23-2 064-792-5646
에디터 / 황정희
사진 / 오진권
일러스트 / 강지호
제8회 가파도청보리축제 : 2016년 4월 9일(토) ~ 5월 8일(일) / 장소 : 가파도 일원 / 내용 : 청보리밭 걷기, 10-1 올레길 보물찾기, 보리밭연날리기, 커플자전거대회, 소라잡기체험 등 / 문의 : 가파리사무소 064-794-7130, 대정읍 064-760-4082 / 주관 : 가파도청보리축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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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땐 보리가 노랗게 익어갈떄면 보리방학이란 특별한 방학이있었는데 …..
요즘 그때가 그립네요 기사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