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은빛 마녀의 유혹, 그녀의 이름은 “겨울 한라산”

47호 겨울한라산메인

 

은빛 마녀의 유혹, 그녀의 이름은 “겨울 한라산”

 

겨울바람이 거센 한라산에 은빛 마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길고 긴 머리채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수없이 많은 눈 알갱이들이 박혀있다.

정신없이 춤을 추며 겨울을 칭송하는 그들만의 파티에 초대된 사람만이

겨울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만날 자격이 있다.

 

KA-18

만세동산이 온통 하얀 눈밭이다.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은빛세상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파아란 하늘가를 따라 트레킹을 즐긴다.

 

 

WINTER  HALLA

겨울산의 매력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본 이라면 그 제어할 수 없는 유혹에 수렁처럼 빠져든다.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을 헤치고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 끝에 정상에 섰을 때의 가슴 뭉클한 감동, 백설처럼 하얀 눈밭에 펼쳐진 아름다운 눈의 왕국에서의 짧지만 너무도 달콤했던 시간은 수년이 흐른 후에도 퇴색되지 않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겨울 한라산이 그렇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나라 가장 남쪽에 자리한 제주도 중심부에 의연하게 솟아있는 한라산을 그리워하게 되니, 상사병이 따로 없다. 흔히들 남녀 간에만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의 대상은 이렇듯 겨울 한라산이 될 수도 있고, 가을 푸르른 하늘이 될 수도 있고 여름 쪽빛 바다색이 될 수도 있다. 올겨울 한라산과 깊은 사랑에 빠져보자.

 

 

47호 겨울2

❶ 1m이상 쌓인 눈 위로 안내판에 겨우 보인다. 왜 힘들게 산에 오르냐고? 산이 거기에 있고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❷ 은빛마녀의 별궁이라고 할 수 있는 어승생악에서 바라본 어리목 계곡의 모습이다. 동양화 한폭이 펼쳐진듯 빼어난 풍경이다.

 

 

올겨울 은빛마녀를 만나기 위해 한라산으로 향하다.

회색빛 도시에도 살포시 눈이 내려앉는다. 금세 흙탕물이 되어버리는 모습이 싸구려 화장을 제대로 지우지 않은 여인의 낯빛을 보는 것처럼 눈살이 찌뿌려진다. 그에 반해 한라산의 은빛마녀는 얼마나 도도한가. 절대로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아쉬운 사람이 고개를 수그리고 무릎을 꿇듯이 은빛마녀의 매력은 너무도 강렬하다. 제주도의 심장부이자 어머니와도 같은 한라산, 뜨거운 열정이 뿜어져 나와 그곳만은 한겨울에도 열기가 피어오를 것 같은데, 겨우내내 은빛 설국이다. 11월 어느새 찾아온 첫눈은 이미 봄이 완연한 해안마을을 굽어보는 4월까지 계속되어 눈의 왕국을 만든다. 한라산의 참맛은 겨울에 있다.

 

 

KA-18

어리목코스의 기나긴 숲길을 거대한 수목 등장군들의 경호를 받으며 통과하였다. 숲이 끝날 즈음 눈앞이 시원해질 정도로 드넓어진 눈밭이 나오며 이 길을 따라 사제비동산을 오르게 된다.

 

 

숫눈 위에 내 발자국 찍어 은빛마녀에게 인사를 전하다.

가랑눈, 가루눈, 길눈, 마른눈, 만년눈, 밤눈, 복눈, 봄눈, 소나기눈, 솜눈, 숫눈, 싸라기눈, 자국눈, 진눈, 진눈깨비, 첫눈, 찬눈, 함박눈….. 우리나라에서 눈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이렇게 많은 눈이라는 단어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사람들 참으로 감성이 풍부하고 표현력도 좋다. 영어의 snow에 비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가. ‘숫눈’은 눈이 와서 쌓인 그대로의 눈이다. 눈이 내려 쌓인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눈으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그렇고, 호젓한 산 속이나 막 내려 아직 아무도 밟은 적이 없는 눈밭이 이런 눈이다. 이런 눈을 보면 최초로 밟아보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 않는가. 한라산은 그런 숫눈 의 천국이다. 숫처녀의 순수함으로 가득한 한라산에 올겨울 꼭 발자국으로 인사를 해보자.

 

 

47호 겨울4

❶ 눈이 바람결에 치마를 펼치듯 한쪽 방향으로 얼어붙어 있다. 상고대는 눈꽃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❷ 만세동산을 지나면 돌계단이 윗세오름대피소까지 이어진다. 눈에 뒤덮여 돌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 오름능선이 하릴없이 배웅을 하고 있다.

 

 

한라산 1700고지(윗세오름)에서 은빛마녀를 껴안다.

한라산을 오르는 코스는 백록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성판악, 관음사 코스와 1700고지인 윗세오름까지 오르는 영실, 어리목 코스, 돈내코탐방로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가볍게 눈산행을 할 수 있는 어승생악 코스가 있다. 지금부터 트레킹 할 어리목코스는 한라산 등반로 중 가장 완만한 코스로 다른 계절에는 숲속이 길게 이어져 지리할 수도 있는데 눈꽃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반겨주는 겨울이면 다양한 눈의 모습을 감상하며 겨울산행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코스로 꼽힌다. 안개와 바람이 빚어놓은 상고대에서부터 나무와 숲에 쌓인 눈이 만드는 설화, 눈이 녹다 갑자기 차가와진 기온에 얼음 알갱이로 변한 빙화 등 눈꽃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산행 중에 살펴보는 것도 겨울산행을 흥미롭게 하는 요소다.

어리목광장에서 조용한 숲속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눈꽃으로 한껏 치장한 키 큰 수목들이 눈의 왕국의 수문장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1시간 이상 이런 길이다. 눈꽃의 진수를 만나며 겨울산행의 묘미를 즐기다 보니 숲이 끝나고 사제비동산에 이른다. 바람을 막아줄 나무들이 거의 없어져 옷깃을 여며 발걸음을 재촉하면 오름 능선과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세상에 파란 하늘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맞아준다. 드문드문 보이는 길을 표시하는 빨간 깃발과 가지에 눈을 무겁게 얹은 채 서 있는 나무 동장군의 모습이 이채롭다. 산행의 끝지점인 대피소에서 먹는 따끈한 국물과 커피 한잔이 삶의 온기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라산이 거느린 오름, 어승생악에서 나누는 겨울이야기

어승생악은 가벼운 등산을 원하는 탐방객이 즐겨 찾는 오름으로 정상까지 30~40분 정도 소요된다. 겨울산행을 해보고는 싶은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거나 준비가 충분하 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리목광장에서 한라산탐방안내소 옆으로 입구가 나있는 어승생악을 올라보도록 하자. 어승생악은 숲과 조릿대가 무성한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시야가 트이는데, 이곳에서 만나는 어리목계곡의 골짜기골짜기 눈 쌓인 풍경은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 아름답고 장엄함까지 하다. 정상부에 서면 제주 서쪽 전체가 보이는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이러한 조망권은 1945년 당시 일제군사시설인 토치카가 만들어진 이유를 짐작케 한다. 짧은 시간 산행으로 겨울산행의 백미만 골라 맛보는 듯한 느낌, 어승생악은 은빛마녀의 별궁 같다.

 


Tip. 겨울 등반 : 겨울산행은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위험요소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한라산은 겉으로 보이기는 완만한 형세를 보이지만 각종 조난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기후가 급변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예측할 수 없는 기상조건을 지니고 있는 한라산을 겨울에 오를 때는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기상상황을 체크하여 산행하도록 해야한다.

겨울 등반에 필수! : 눈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아이젠은 필수!! 두꺼운 옷을 입는 것보다는 옷은 되도록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어서 보온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자. 땀을 흡수하는 보온내의를 입는 것도 좋다. 여벌옷과 양말도 준비하고, 방수 재질 장갑과 방수기능이 있는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스패치와 귀를 덮는 모자를 준비하면 눈보라에 노출이 덜 되므로 여러모로 좋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제주여행매거진 <아이러브제주>에 실린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습니다.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