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제주의 해안유적들

해안유적1

신흥리 바닷가의 방사탑은 왜구(일본해적)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세워졌다.

 

제주의 해안유적들

상처 입은 영혼아, 바다로 오라!

 

 

이맘때면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어도 마음의 발길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동동거리기 시작한다.

영혼에 상처 입어서일까, 자꾸만 자기를 바닷가에 세워두는 꿈을 꾸기 시작하거든 바다로 가자, 몸이 원하는 바다로! 잘 익은 바다의 빛깔과 향기, 몸짓,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줄 때 영혼의 깊은 곳은 비로소 출혈을 멈추고 아물기 시작하리라.

이런 처방이 필요한 도시병 환자들에게 나는 제주바다를 권한다. 달리는 차 속에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양말을 벗어던지고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걸어보시라. 하얀 모래사장에 구불거리며 남겨진 바다의 섬세한 지문(指紋)도 읽어볼 일이다. 그리고 문득 눈을 들어 제주 해안의 유적들을 바라보며, 가만가만 말을 건네는 옛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라.

 

해안유적들2

❶ 화북 환해장성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방어유적. ❷ 용담리 해안가의 도댓불과 야경. ❸ 하귀~애월 간 해안도로변의 연대는 연기로 적의 침입을 알렸던 곳.  ❹ 고기잡이배의 안전한 귀항을 위한 고산 자구내 포구의 도댓불.❺ 섭지코지 해안의 불턱은 해녀들의 휴식처. 

 

제주도의 바닷가에는 제주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말해주는 유적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왜구(倭寇)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연대와 환해장성, 허한 방위에 세웠던 방사탑(防邪塔), 소금을 만들었던 소금빌레, 고기잡이배들의 안전한 귀항을 위하여 어유(魚油)등잔에 불을 밝혔던 도댓불, 해녀들의 휴식처였던 불턱, 고기를 잡던 원담, 바다의 신 용왕에 대한 신앙의 장소 등, 그런 곳에는 옛사람들의 삶의 철학과 지혜가 배어있다.

 

바다는 끊임없이 출렁거렸고 그 파도를 타고 왜구들은 평화로운 마을에 들이닥쳐 가축과 곡식을 약탈했다.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밀물을 타고 와서 약 두 시간 동안 분탕질을 하곤 썰물을 타고 내뺏다. 고려시대부터 이에 대한 방어로 바닷가에 돌담을 쌓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섬을 빙 두르는 환해장성이 본격적으로 쌓아졌다.

 

방사탑은 제주도의 곳곳에 서있는데 특히 바닷가에 많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왜구가 침입하던 바다야말로 마을의 가장 허한 방위였다. 또한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던 젊은이들이 풍랑에 희생되는 곳 또한 바다였다. 그래서 바닷가 마을의 젊은이들을 해치는 사악한 기를 막기 위해 방사탑이 세워졌다. 탑을 쌓기로 결정하면 마을에 사는 남녀노소, 환자를 불문하고 한사람도 빠짐없이 나서서 돌멩이를 모았다. 탑을 쌓는 바닥에는 밥주걱과 솥단지를 묻었다.

 

해안유적들3

❻ 종달리 해변의 해신당은 어부와 해녀들이 풍요와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곳.  ❼ 구엄리의 소금빌레는 바닷물을 햇볕에 졸여 돌소금을 생산하던 곳.  ❽ 사악함을 쫓는 매의 형상석이 방사탑 꼭대기에 놓여있다. 

 

탑의 기초가 되는 첫 돌을 누가 놓느냐가 중요했다. 허한 방위여서 거기서 나오는 살(煞)을 맞아 사람이 상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 자청하여 그 역을 맡았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마을을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각오에서였다. 마을사람들은 하루 종일 함께 탑을 쌓으면서 외부로부터의 침범에 대하여 공동체의 단결로 대항할 것을 다짐했던 것이다. 방사탑 꼭대기에는 매의 형상을 한 돌을 올려놓거나 나무를 새 모양으로 깎아 꽂았다. 매는 제주도전설에서 한라산신의 화신으로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제주를 지키는 상징적인 새이다.

오름과 바닷가에는 왜구의 출현을 연기로 알리는 연대와 봉수대가 축조되었다. 오름에 있는 봉수대는 주로 밤에 불을 피웠고, 바닷가의 연대는 낮에 짙은 연기를 피워 올려 수평선상에 낯선 배의 출현을 알렸다. 이러한 방어유적들은 지금도 바닷가에서 왜구의 침입을 증언하고 있다.

 

금능해수욕장(원담)13

해안 얕은 수심에 돌을 에둘러쌓아 고기를 잡던 금능해변의 원담

 

제주도는 유난히 소금이 귀하였다.

해안이 용암으로 뒤덮이다시피 하여 소금을 제조할 수 있는 갯벌이 없었다. 그러나 생명유지의 필수품인 소금을 얻기 위한 노력은 해안가의 너럭바위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너르닥한 용암 암반에 구획을 지어 진흙으로 둑을 만들었다. 여기에 바닷물을 퍼다 놓으며 4-5일 정도 강렬한 직사광선과 바람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짜디짠 소금물이 되었다.

이 염수를 모아 가마솥에서 끓이면 소금이 되었다. 이렇게 끓여 만든 소금을 자염(煮鹽)이라 한다. 자염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소금제조방법으로 얻었던 재래소금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제주에서 소금을 얻던 방법은 마을의 처한 환경에 따라 달랐다. 갯벌을 이용한 마을이 있는가 하면 모래밭에 진흙을 깔아 다진 후 다시 그 위에 모래를 깔아서 소금밭을 만든 마을도 있다. 이런 소금밭이 아직도 옛 모습으로 바닷가에 남아 있는 마을이 더러 있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김순이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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