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비경

오름에는 바람이 있다

56호 백대비경3

 

‘오름이 살아있다’ 詩

오름에는 바람이 있다

 

지난밤의 그 지독했던 바람에 한없이 떨어야 했던

풀잎들의 휘인 모습은

어쩌면 삶에 지친 나 자신의 모습으로 눈에 밟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꽃은 불평 한 마디 없이

꽃봉오리를 열어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 삶에의 경건함이

마음의 옷깃을 다시 여미게 한다

오름에서 만나는 돌멩이 하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몇 천 만년의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냐

자신이 그럴듯한 산악도 아니고

하다못해 바위도 못되고

 

그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하찮은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곳에 불평 한 마디 없이 있다

거기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떳떳하다는 듯이

어제도 불었고 오늘도 불고 있는 바람 속에서

마음의 검은 구름이 날아간다

집이 없는 설움이 날아간다

찢어진 사랑이 날아간다

외톨이의 소외감이 날아간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야멸차게

때로는 간지럽게 때로는 독살스럽게

오름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마음에 켜켜이 쌓인 찌꺼기와 때를

속속들이 쓸어내고 털어낸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김순이 시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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