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비경

오름에는 소리가 있다

56호 백대비경2

 

‘오름이 살아있다’ 詩

오름에는 소리가 있다

 

소멸과 생성을 순환하는 생명의 소리가 있다

사람의 마을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귀에 쑤셔 박힌 소리들이

오름에 오르는 발자국마다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심장을 졸아붙게 하고 숨을 멎게 하고

눈앞을 깜깜하게 하던

소리의 더께들이 떨어져 나간다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 TV소리,

한밤중의 불자동차 소리,

냉장고의 콤프렛샤가 돌아가는 소리,

직장의 상관이 쏘는 눈총소리

주택가를 돌아다니는 잡상인의 소리……

원하지도 않았는데

마음과는 상관없이 달려와

귀를 때리고 정신을 흩어 놓았던

그런 소리들이 떨어져나간 그 자리에

싱그럽고 해맑은 소리들이 고즈넉하게 깃든다

떠오르는 아침 해의 뜨거운 숨소리가 들린다

지하로 흘러가는 생수(生水)의

차고 맑은 소리가 들린다

꽃봉오리는 실 잣는 들꽃의 물레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빗자루 질하는 구름의 소리가 들린다

달빛 아래서만 문을 여는

어떤 신비한 꽃의 소리가 들린다

오랜 번데기의 고행 끝에

허물을 벗는 곤충의 소리가 들린다

거미줄에 맺히는 이슬방울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들린다

빈약한 영혼을 고해(告解)하는

내 깊은 곳으로부터의

슬픔어린 소리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김순이 시인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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