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이중섭거리가 있다. 이중섭 한때에 가족이 오순도순 살며 가장 큰 행복을 누리던 곳, 초가집 한 칸에 몸을 의지하고 서귀포 바닷가의 깅이(게)로 끼니를 연명하던, 그러나 마음만은 더할 수 없이 따뜻하였던 시절이 바로 이곳 이중섭생가가 있는 이중섭문화거리에 묻어난다. 이중섭이 산책 하였을 길을 따라 함께 거닐며 그의 예술혼을 일깨우는 볼거리, 느낌거리를 눈으로, 마음으로, 손끝으로 따라가 본다.
이중섭문화거리는 소호를 연상시킨다. 크고 작은 공방과 아기자기한 문화예술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창작스튜디오에 거리 공연장, 토·일 문화예술디자인시장 등이 들어서있다. 예술의 창작소이자 전시장, 체험공간으로 이루어진 거리는 예술인과 일반인들이 머물고 교감하는 길이다. 이중섭거리가 문화거리로 탈바꿈 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옛 모습 위에 예술로 색칠을 하니 판이하게 다른 길이 되었다. 이중섭생가와 전시관이 좁은 골목길, 옹색한 집들 사이에 덩그마니 자리하던 시절을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변화는 진행중이다. 이 탈바꿈에는 서귀포를 문화예술도시로 바꾸려는 시의 노력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예술인과 소소하나 정감 넘치는 작은 문화카페들이 이중섭의 예술혼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힐링을 위해 거리를 걷는다. 제주의 따뜻한 봄날, 마음도 치유하고 예술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 거리산책을 나서보자.
❸ 사랑이 꽃피는 이라는 부제가 붙은 카페 ‘미루나무’다. 연둣빛 색감이 봄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전통차와 요거트,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곳이다. ❹ 이중섭의 미술 작품을 만나고 싶은 이라면 이중섭미술관을 향해보자. 그의 편지와 미술작품을 만남으로써 그의 예술혼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❺ 만들어져가고 있는 중섭찻집, 흙벽과 손으로 만든 소품들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스러운 곳이다. ❻ 구불구불 골목과 뒷마당을 지나 올라서니 이중섭거리의 옛집들 지붕이 보인다. 옛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변해가는 이중섭문화거리, 그래서 더 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문화거리에서 제일 첫 번째로 만나는 곳은 작은 카페 자박 Coffee & Snack이다. 문화거리 안 이라기보다는 약간 벗어난 초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귀 기울여 들어보자. “자박자박” 자박은 발을 가만가만 가벼이 내디디는 소리다. 문화거리 산책의 첫집으로 딱 알맞은 카페이름이다. 비교적 착한 가격이 눈에 들어온다. 아메리카노 3,000원, 생맥주가 2,500원이다. 손글씨 메뉴판과 주인장의 감각이 담겨있는 소품들이 구석구석 꼼꼼히 둘러보게 한다. 문화거리 산책의 워밍업을 이곳에서 하여도 좋고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가벼운 휴식을 하여도 좋을만한 곳이다. 자박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ㅈ ㅜ o ㅅ ㅓ ㅂ” 이중섭문화거리의 입구를 알리는 아치형 조형물이 서있다. 아치 너머로 가로등을 비롯하여 그의 작품들이 거리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이중섭문화거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입구를 지나면 우측에 창작스튜디오 & 공예공방이다.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로 입주작가를 모집하여 1년간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한다. 입주작가들은 1년여의 자유로운 창작활동 후에 작품 1점을 기증하여 1층 갤러리를 채워나간다.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 열리는 토·일에 갤러리 관람이 가능하고, 종종 입주 작가 작품을 비롯한 특별 전시회가 열리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창작스튜디오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미루나무 카페가 보인다. ‘사랑이 꽃피는’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연둣빛 색감이 봄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전통차와 요거트,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곳으로 내부는 외관과 달리 심플한 느낌이다. 미루나무를 지나면 우측에 이중섭거주지가 있다. 매화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봄을 전한다. 툇마루가 있는 초가집과 마당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견공이 있는 한가로운 오후 한때의 풍경이다.
현재의 평화로움과 달리 박수근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대서양화의 양대거목이라 불리는 화가 이중섭이 서귀포를 찾은 때는 전쟁이 한창인 난리통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서귀포에 피난을 온다. 마을 이장 부부가 눈앞에 보이는 이 초가집의 조그만 방 하나를 내어주어 가난한 피난살이를 시작한다. 먹을거리가 없어 서귀포 앞바다에서 숱하게 게를 잡아먹었던 이중섭.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배고픈 피난시절의 서귀포 생활이었지만 그의 그림에서 서귀포는 힘겨움의 무대가 아닌 이상향의 세계로 그려진다. 왼쪽으로 섶섬이 보이고, 문섬과 새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서귀포앞 바닷가는 <서귀포의 환상>과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 따뜻하게 표현된다. 제주를 떠나서는 가난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서귀포에서 가족이 함께 살았던 행복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바닷가의 아이들>에 담겨있다.
이중섭이 서귀포에 머문 기간은 11개월로 짧았지만 이곳에서 소의 순한 눈망울을 마주하였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섬, 아이들, 게와 물고기를 만났다. 서귀포가 힘든 피난 생활에 예술적 모티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중섭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이중섭미술관을 놓치지 말자. 이중섭미술관 들어가는 길 위쪽에 네모난 극장건물이 눈에 띈다. 구아카데미극장으로 현재 영화는 상영하지 않지만 극장 앞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야외무대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 열리는 토·일요일에만 공연이 있다.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은 인기만점 예술전시체험공간이다. 토요일에만 열리던 것이 워낙 인기가 좋아 올 2월부터는 일요일에도 열린다. 지난겨울 새롭게 단장한 시장은 제주민속공예작가와 동아리, 시민 등이 만든 공예품을 전시, 판매, 체험할 수 있는 14개의 부스로 구성된 문화거리의 명물이다. 프라모델, 목공예, 칠보공예, 도자기, 천연염색, 조가비공예, 낭(나무)목걸이, 문인화 등의 판매장, 체험장이 운영 중이다. 많은 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부스는 3개월마다 모집 공고하여 교체된다고 한다. 시장거리 중간에는 카페 오 ㅏE가 있다. 투명한 창으로 예술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기 좋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1시에 이곳 문화거리를 찾으면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특별한 걷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이중섭공원을 출발하여 4곳의 미술관과 전시관(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소암기념관)을 들르고 걷기코스 주변에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되어 감상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5km의 산책길이다. 3시간 2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예술에 조예가 없더라도 해설사가 함께 하므로 이해하기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시장이 열리지 않는 요일에는 공방체험이 어떨까. 시장 위쪽으로 트멍공방(트멍은 틈이라는 의미의 제주어)에서 자잘한 공예작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중섭공방에서 동판화체험과 제주스러운 소품으로 선물을 마련하여도 좋겠다. 그 위로 중섭찻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목공예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지고 있는 새로운 문화카페가 보인다. 완성된 카페모습이 기대된다. 걷고, 구경하고, 참여하며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배가 출출해졌다 싶으면 꼼지락 키친카페를 추천한다. 노란색 외관이 눈에 띈다. 내부에 들어서면 오목조목 센스가 넘치는 인테리어가 편안함을 안긴다. 인기메뉴인 8000원짜리 돈가스에 즐거운 비명이 절로난다. 간단한 메뉴를 찾는다면 꼼지락에서 나와 야외전시공간 끝자락 맞은편에 위치한 ‘바람의노래를 들어라’가 좋다. 담백한 토스트, 베이글 세트와 주먹밥 &샐러드가 있는 런치메뉴가 인기다. 공정무역 커피와 제주만의 맛있고 상큼한 라임슬러쉬 등의 음료가 있다.
❶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은 인기만점 예술전시체험공간으로 14개의 부스로 구성되어 찾는 이들에게 오감 문화만족을 느끼게 한다. 거리 바닥에 그려진 그림도 즐거움거리다. ❷ 곳곳에 그려진 벽화가 문화예술거리의 분위기를 멋지게 장식한다. 의자가 그려진 벽화는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유혹적인 아이템이다. ❸ 토·일요일 열리는 문화예술디자인시장에는 목공예, 칠보공예, 도자기, 천연염색 등의 판매장, 체험장이 운영 중이다. 천연염색의 고운 빛깔에 외국인들의 호기심어린 질문이 이어진다. ❹ 평양면옥의 별미 녹두빈대떡이 지글지글 구워진다. 겉은 바삭하게 속은 부드럽게~ 그 맛이 살아있는 빈대떡과 함께 쫄깃한 면발의 밀면이 이곳의 대표메뉴이다.
오늘이 어제와 완전히 다르고 미래에 더 달라질 이중섭문화거리는 작지만 특별한 카페들과 문화예술의 향취로 가득하였다. 연상되어 인사동거리가 떠오른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좁은 골목길의 인사동은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곳,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이 많은 곳으로만 알려졌었다. 하지만 지금 인사동을 보면 어떤가. 쌈지길에 갤러리들, 민속품과 소품, 맛집들… 외국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예술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중섭문화거리가 인사동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날, 비록 더딘 발걸음일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알맹이 있는 문화콘텐츠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술을 만나고 문화를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문화힐링로드 “이중섭문화거리”를 다시 찾았을 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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