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오름 표지석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백록담 남쪽 분화구 벽을 따라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가는 내내 백록담 분화구를 둘러싼 암벽의 위용스러움이 이어진다.
한라산 영실의 가을은 은근한 여인의 향기 속
우람한 남성미를 드러낸다.
가을 한라산의 은은한 가을빛이 힘찬 붓질 아래 동양화 한 폭을 그리고 있다. 가을여인의 향내가 잔잔하게 풍기다가 백록담 분화구벽의 웅장함과 어우러진다. 가을 동양화 속에서 남벽은 포효하듯 우렁찬 함성 소리를 낸다.
❶ 영실 병풍바위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제주도 오름군락의 모습이다. 가까이 이스렁오름이 보인다.
한라산은 높이가 1,950m에 달하는 남한 최고봉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여성미가 흐르는 산이라고 하듯이 완만한 능선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습이 푸근함을 안긴다. 제주사람들은 제주도 사방 곳곳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시름을 잊었고 가슴에 품어 의지를 하였다. 제주인에게는 어버이와도 같은 존재로 가을 한라산은 다른 지방의 가을산과는 조금 그 느낌이 다르다. 자애로운 모습으로 그 오묘한 가을色을 시처럼 잔잔하게 풀어놓아 품위가 있다. 화려하지 않은 은근한 미가 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의 한라산(漢拏山)은 그 이름만으로도 서정적이다. 정상의 백록담의 신비로움은 백두산의 천지와 비견되곤 한다.
올가을에는 2009년 재개방된 구간이 포함되어 코스가 연장된 영실코스를 산행해보자. 정상인 백록담까지는 가지는 않지만 영실에서 윗세오름, 다시 남벽분기점까지 백록담 분화구벽의 장관을 보며 산행할 수 있는 영실~남벽분기점까지의 산행 여정이다. 한라산의 장엄함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가을 한라산의 백미라고 할 만한 코스이다.
❷ 오백여개의 기암괴석이 천길만길 낭떠러지 위에 삐죽삐죽 솟아있고, 바위 절벽의 깊은 굴곡이 오랜 세월의 질곡을 담고 있는 듯 선명하다.
오백장군이 호령하는 듯한 위엄이 느껴지는 영실
한라산을 오르는 코스 중 영실코스는 수많은 기암괴석이 서있는 오백장군, 병풍처럼 넓은 바위절벽과 저 멀리 보이는 오름과 어우러진 산철쭉의 화사함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오르는 코스이다. 가장 최단기간 한라산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은 윗세오름대피소까지밖에 갈 수 없었지만 2009년부터는 윗세오름대피소에서부터 방애오름샘을 지나 남벽분기점까지 코스가 연장되었다. 영실코스는 버스를 타고 와서 산행을 시작할 수도 있는데 버스는 영실관리사무소에 정차한다. 영실관리사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4km 자동차로 이동하거나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을 4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일 때는 천천히 산책하듯 길을 올라도 좋으나 일정이 빠듯하다면 자동차를 이용하여 휴게소까지 가는 것이 좋다. 본격적인 산행은 영실휴게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산행을 시작하여 숲속을 천천히 걷다보면 우측에 아름드리 적송 군락이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른 아침 산행을 시작하였다면 소나무 사이를 비추는 아침빛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적송 숲을 지나면 활엽수림이 시작된다. 이때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주도는 대부분 건천이어서 이런 물소리가 무척이나 반갑다. 삼림욕을 하면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한라산 숲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숲이 울창한 계곡을 지나면 영실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목인 경사진 돌계단이 나온다. 꽤 숨이 차오르게 만드는 급경사다. 단풍든 나뭇잎 사이로 영실의 봉우리들이 감질나게 보이기도 한다. 깔딱깔딱 올라서다 보면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갑자기 시야가 환해진다. 산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귀포 앞바다의 시원한 풍경과 아스라이 펼쳐진 제주의 아름다움이 눈을 가득 채운다.
❶ 방애오름과 그 너머로 한라산 백록담 서벽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방애오름과 그 주변은 5~6월에 털진달래와 철쭉이 융단처럼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❷ 간혹 낮은 계곡을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도차가 별로 없어 수월한 편인 윗세오름 ~ 남벽분기점 구간을 등산객들이 걷고 있다. ➌ 한라산 남벽의 위용이 드러나는 코스를 걸으며 거친 부드러운 한라산의 이미지와는 다른 거친 한라산의 속살을 느낀다. ❹ 영실계곡의 깊고 급한 경사의 숲이 등성이 아래로 줄달음질쳐 내려간다. ❺ 구상나무숲에 들어가기 전 좌측에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 군락들이 있다. 나무들이 말라 죽었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오랜 세월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 특별한 풍경을 만든다.
영실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은 동양화 속으로 걸어가는 듯하다.
오백여개의 기암괴석이 천길만길 낭떠러지위에 삐죽삐죽 솟아있고, 병풍처럼 펼쳐졌다하여 병풍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절벽이 빼어난 산수화를 그려낸다. 영실에는 오백 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위해 거대한 솥에 죽을 쑤다 빠져 죽은 설문대할망의 전설이 전해 온다. 아들들은 어미가 빠져 죽은 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저 오백여개의 바위들로 변하였다고 한다. 전설에서 그려낸 설문대할망의 애끓는 모정과 아들들의 슬픔이 오백여개의 바위에 담겨있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절벽 틈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가을 단풍이 동양화의 운치를 더욱 깊게 한다. 등산로 오른편은 깎아지른 절벽이 아슬아슬하다. 때론 산등성이 아래로 숲이 줄달음질 쳐 내려가는 모습이다. 멀리서 바라본 한라산과는 다른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는 코스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은 한라산을 지키고 장수처럼 보인다.
구상나무 숲을 통과하니 드넓은 벌판인 선작지왓이 드러난다. ‘작지’ 는 조금 작은 돌을 말하고 ‘왓’ 은 벌판이란 뜻의 제주 방언이다. 드넓은 벌판 너머로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과 뭉게구름 너머로 백록담 분화구벽이 위용을 자랑한다. 노루들이 즐겨 찾는 샘물터인 노루샘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너무 가문 날씨에는 아주 간혹 마르기도 하지만 한라산 산행 족족 마셨던 것을 떠올리면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노루샘을 지나면 평지로 금세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화장실도 이용하고 식수, 컵라면, 커피, 비옷 등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도 한다. 식사를 하거나 가지고 간 간식으로 작은 성찬을 마련하여 일행과 담소와 휴식을 취하는 영실코스의 중간정거장이다. 제주시 방향에서 올라오는 어리목코스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먹는 김밥과 컵라면은 꿀맛이 따로 없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 놓고 파란 가을하늘을 벗 삼아 흐르는 땀을 식힌다. 여행자와 산악인들이 던져준 먹거리에 맛을 들인 탓인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바로 가까이 다가오는 까마귀들이 이채롭다. 한라산 영봉의 가을빛이 드리운 곳에서 휴식하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❶ 방애오름샘에서 목도 축이고 쉴 수 있도록 마련된 곳에서 잠시 휴식한다. 한라산 남벽이 파란 가을하늘 아래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❷ 영실코스의 선작지왓에 있는 노루샘과 함께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방애오름샘이다. 건기에는 마르는 경우가 있다. ➌ 한라산 고산의 가을색은 이렇듯 황무지를 떠올리게 한다. 고산에는 구상나무 외에 키작은 관목만이 자라고 주로 초지로 되어 있어 이국적인 산정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바위절벽이 포효하는 듯한 백록담 분화구 남벽
영실휴게소에서 윗세오름대피소까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윗세오름 표지석 옆에 난 길을 따라 다시 출발한다. 봄과 가을 (3~4월, 9~10월)에는 오후 1시 30분에 남벽 방향으로 가는 것을 통제하므로 등반시간을 고려하도록 한다. 이곳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2.1km로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이다. 영실능선의 가파름에 비하면 큰 힘이 들지 않는 코스다. 간혹 낮은 계곡을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도차가 별로 없어 수월한 편이다. 백록담 남쪽 분화구 벽을 따라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언덕 하나를 넘었다 싶을 때 조금 깊은 계곡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백록담 분화구를 둘러싼 암벽의 위용스러움이 계속 이어진다. 한라산 화산체는 30만 년 전~2.5만 년 전을 생성시기로 본다. 그때 만들어진 분화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서벽에서 시작되어 남벽분기점까지 가는 길
세로로 깊이 패인 주름을 보듯 바위 절벽의 깊은 굴곡이 오랜 세월의 질곡을 담고 있는 듯 선명하다. 특히 남벽분기점에서 바라본 분화구 벽의 모습은 더욱 장엄하다. 한라산은 워낙 날씨 변화가 심하고 비가 많이 와서 남벽이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늘은 운이 좋다. 새파란 가을 하늘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남벽은 위용에 찬 바위절벽이 포효하는 듯하다. 우람하고 신령스러운 자태로 우뚝 솟아 있어 한라산에 대한 경외감마저 인다. 저 암벽 너머에 백록담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고여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바깥에서 벽을 바라보고 있지만 훗날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의 신비로움을 꼭 만나고 말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남벽분기점 가기 전에 방애오름 샘에서 목을 축이면서 하늘을 보니 가까이 다가온다. 그만큼 높이 올라왔음이다. 영실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남벽 분기점에서 다시 한 번 남벽을 바라본다. 다시 또 이 한라산의 장엄함을 만날 날을 기약하기 위해. 산행시작점이 영실휴게소이기 때문에 원점회귀를 위해 하행을 서두른다. 한라산은 날씨변화가 심해서 해가 저물기 전에 내려가는 것이 좋다.
에디터 / 황정희
포토그래퍼 / 오진권
촬영장소 / 영실코스
영실탐방안내소 2.4km(40분) ▶ 영실휴게소 1.5km(50분) ▶ 병풍바위 2.2km(40분) ▶ 윗세오름 2.1km(1시간) ▶ 남벽분기점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4km 구간은 15인승 이하 차량만 운행이 가능함
✽탐방로 등급 : 영실계곡에서 병풍바위 정상까지만 난이도 A(어려움)이고 나머지 구간은(쉬움)
✽입산통제시간 춘추절기(3~4월, 9~10월) 탐방로입구 통제소(14:00), 윗세오름통제소(13:30)
✽문의전화 : 064-747-9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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