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귀중한 제주 유산들이 사라지고 있다. 포구-II

포구메인

 

가장 제주적인 것이 무엇일까?

귀중한 제주 유산들이 사라지고 있다 – II

 

 

포구1

애월포구

 포구2

도두1동 포구(돈지개, 고븐개)

 

과거 물자와 사람이 오가며 마을의 중심이 되었던 포구가 확장·수리를 거치며 본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이 지형을 고려해 하나하나 손으로 지어 제주의 지형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던 귀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예전의 포구에 대해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포구3

하귀2리 포구 / 옹포포구

 

옛 제주에는 해안을 돌며 마을마다 포구들이 만들어졌었다. 문헌 속의 제주 포구를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1530)과 김상헌(金尙憲)의 <남사록>(1601),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1653), 이증(李增)의 <남사일록>(1680),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1703)에는 마을에 축조된 포구의 현황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이원진의 <탐라지>에 따르면 “각 포구마다 옛날에는 감고(監考)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 다만 조천포와 화북포에는 감고가 있다. 또 양직(梁直)이 있어 포구를 드나드는 사람을 살피기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구절로 미루어 본다면 모든 포구에는 감고(監考)와 양직(梁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감고’는 정부의 재정 부서에서 전곡(錢穀)출납의 실무를 맡거나 지방의 세금 및 공물의 징수를 담당하는 벼슬아치고, ‘양직’은 배가 출입하는 포구를 지키는 사람 곧 ‘포구지기’인 셈이다. 포구마다 ‘감고’와 ‘양직’을 두어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 백성들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포구는 바닷길 나들이 길목이기에 이곳에는 포구의 시설과 당, 수전소, 연대, 봉수, 소금밭 등이 있었고 또한 ‘진상의 길목’이자 ‘표류와 유배의 시작’이기도 한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현장이었다.

태풍의 길목 제주 섬, 우리 선조들은 거친 풍파를 막아내며 삶의 터전인 바다밭을 만드는 지혜를 터득하기도 했다. 제주 포구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지혜가 배어 있는 현장이다. 이런 포구는 80년대부터 몰아친 개발붐으로 해안도로 개설로 그 목이 잘려나가고, 증축과 개축으로 원형이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은 옛 모습이 남아있는 포구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포구4

함덕포구(희룡이, 앞개, 당뒤)

포구5

조천포구(새성창, 무근성창)

 

수많은 옛 제주의 포구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개의 포구 기록을 더듬어 보자.
애월포구

애월은 예로부터 북쪽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한 전략 요충지였다. 애월진성(涯月鎭城)은 제주 섬을 지키는 방어진지이자, 해상활동의 요충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 유배온 김상헌과 헌마공신 김만희가 이 애월포구를 통해 제주로 들어왔다. 옛 애월포구 입구에 등대가 쓸쓸히 서있다.

도두포구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도두포구는 ‘돈지개’와 ‘고븐개’로 구분했었다. 두 포구는 오른편에 서있는 도두봉을 의지해 만들어졌다. 도두사람들은 ‘송곳여’에서 ‘고븐개’까지 200m를 돌을 일일이 등짐으로 져 날라 성을 쌓듯 방파제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이 방파제를 ‘만리장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옹포포구

지금은 옹포리 포구를 ‘독개’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명월포’였다. 고려원종11년(1270) 이문경장군은 삼별초의 선봉군을 이끌고 명월포로 상륙, 고려관군을 무찔러 승리함으로써 처음으로 제주를 점거하게 된다. 삼별초항쟁과 목호의 난을 겪은 옛 싸움터가 바로 명월포(현 옹포포구)다.

조천포구

제주섬의 첫 관포(官浦)인 조천포구는 관리들이 육지를 드나들 때마다 이 포구를 이용했다하여 조천 마을을 일컬어 ‘조천진(朝天鎭)’, ‘조천관(朝天館)’이라 불렀다. 조천포구 주변에는 도내 어느 포구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다. 이런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구다.

 

포구6

 

함덕포구

함덕리는 고려 원종14년(1273)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과 전투를 별였던 처절한 전장이다. 함덕포구는 전체 형태는 말굽형 모양으로 길게 형성되었다. 희룡성창과 앞개는 1구에 자리잡고, 당귀성창은 3구에 있다. 설촌 당시 축조된 무근성창은 안캐에 해당되고, 새성창은 중캐에 해당된다. 함덕해수욕장 개발로 포구도 매립위기에 처해있다.

하귀2리

포구 하귀2리 미수동은 물이 많은 동내다.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아나고, 물맛이 좋아 마을 이름조차 ‘미수(味水)’다. 이 마을의 포구는 ‘뒷개’로 마을 북쪽에 자리잡고 있고 포구는 ‘안캐’, ‘중캐’, ‘밖캐’로 축조됐다. 포구 앞에는 철재로 만든 등대가 서 있었으나 어느 해인가 사라져 버렸다.

수원포구

한림읍 수원리의 옛 지명은 ‘조물개’ 또는 ‘잠수포(潛水浦)’라 부르는데, 포구는 하동의 평수와 대수동과 용운동에 있다. 돈지동산에서 포구를 바라보면 포구와 바닷물이 평평하게 보임직도 하다. 포구 안에는 우물터가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해 준다.

 

 

아이러브제주도장


에디터 /  서재철

포토그래퍼  / 서재철

1947년 제주출생, 1983년 사진부장(전;제주일보), 1990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전;재민일보), 1998년 자연사랑 미술관 관장(현)

저서 : 제주해녀, 한라산, 한라산 노루, 한라산 야생화, 바람의 고향 오름, 이름모를 소녀, 몽골·몽골사람, 제주생태시리즈-제주의 야생화, 제주의 말·노루, 제주의 곤충, 제주의 버섯, 제주의 새, 화산섬 바람자리 오름, 날마다 솟는 성산, 기억속의 제주포구, 화산섬 제주, 신비의 흔적, 제주의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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